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일하는 걸 기피할까.
필자는 그동안 한 번도 의대 증원 관련해 포스팅을 올린 적이 없다. 의견을 표명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응급실 추석 대란 관련하여서는 한 마디 해야겠다.
군의관 시절 같이 훈련받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있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 죽기 전에 노인들이 응급실만 터치다운하고 사망해도 17억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마 엑스레이에서 작은 폐결절을 놓친 것으로 응급실 의사에게 17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이런 이야기가 자조적으로 회자되는 것 같다. 즉 죽어도 응급실 가서 죽으면 뭐라도 소송거리를 찾아 걸어서 17억 상당을 받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특성상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무한경쟁) 로또 청약단지만 나와도 경쟁률이 수만대일을 넘어가는데, 이런 로또를 놓칠쏘냐 잽싸게 이런 정보를 받아들여 뭐만 생기면 응급실에 갈 확률이 다분히 높다. 그래서 뭐라도 걸려라 싶은 것이다.
이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근데 애초에 이런 소송이 응급의학과에만 있을까. 흉부외과, 외과, 신경외과 등 바이탈 과에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한 번 17억 배상 판결을 받으면 그 의사에게는 재정적 사형 선고와 같다. 따라서 정상적인 정신머리 사람이라면 이런 위험한 의료행위를 기피한다. 특히 지금 군의관을 강제로 응급실에 복무하게 하면서 사고나 의료소송이 생기면 군의관 개인이 책임지게 하는, 즉 이득만 빼먹고 위험을 떠넘기는 구조하에서 말이다. (이거 산업의학에서 양심없는 기업이 근로자에게 하는 짓과 똑같은데?)
따라서 바이탈과의 위기는 의대증원 2000명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소송위험을 없애주는게 최고의 해결책이다. 법으로 면책을 보장해주면 문제가 없을것이다. 악용의 소지는 입법자들이 머리싸매고 고민해서 해결할 일이다.
이게 반복되면 결국 신경외과 의사는 통증 개원하러 개원가로 나오고, 정형외과 고관절 (정형외과의 바이탈) 의사도 통증 개원하러 개원가로 나온다. 타과 바이탈과 의사는 미용 개원하러 개원가로 나온다. 소송위험이 보상을 초과하는 행위를 누가 하겠나. (결국 위의 응급의학과 의사도 일을 그만뒀다. 지금 일하고 있지 않거나 응급실 말고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굉장히 많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의사수가 늘어나면 의사유발 수요가 늘어난다. 어린이집에서 둘째가 오른쪽 팔목을 접질렸는데, 어린이집 보험으로 커버가 되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거의 매일 정형외과 진료를 보게하려고 하더라. 부모인 내가 '아 괜찮아요. 골절 아니었으니 1주일 뒤에 한 번 더 골절 확인하러 엑스레이 찍으면 되요. 스플린트 대충 감아서 팔목 움직이지만 않게 하면 되요' 해도, 스플린트 붕대 하나 삐져나온거 가지고도 인근 정형외과 가려한다.
이렇게 일반인들은 의료 잘 모른다. 그들이 의료를 잘 알게 되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의료수요를 줄일거라 기대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끊임없는 진료를 원한다. 의사가 늘어나면 physician induced deman d 의사유발수요로 의료비만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인두제나 DRG 포괄수가제로 묶는다고? 국민들은 이런 의료제도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붕대만 삐져나와도 바로 인근 의원 뛰어가는게 일반인이다. 이런 일반 국민들의 갈급한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정책을 펴야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지식을 가르치는 건 큰 비용이 들고 큰 진입장벽이 든다. 가르쳐도 머리로는 알아도 의사에게 따뜻한 위로받고 싶은 게 사람이다. 이런 요인들을 좀 고려하면 도저히 무조건 2000명 증원은 나올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