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노동자, 의사 모두가 주의해야 할 것
의사의 소견서는 환자의 의학적 상태와 관련하여 어떠한 의견이 있을 때 작성하는 서류이다. 직업환경의학과에서 작성해주는 업무적합성평가서도 사실상 소견서의 한 종류이다. 다만 그 형식이 정형화되어 있고 어느정도 행정적 구속력을 가진다는 점이 다르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기업에서 직업성 질환이나 손상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면서,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임에도 조그마한 건강장해의 가능성이 보이면 업무적합성평가서를 받기 위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에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보통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일하는 검진센터나 외래 환경이 이러한 업무적합성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장비나 인력 등이 갖춰져 있을리 없다. 결국 수검자의 진술과 현재 확인할 수 있는 혈액검사, 엑스레이 등의 간단한 몇 가지 검사결과를 기반으로 업무적합성 평가서나 소견서 서류를 적어주어야 하는데, 최근의 노동자 고령화현상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심지어 어떤 사업장은 이런 간단한 혈액검사나 엑스레이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문진하는 그 자리에서 소견서를 써 주기를 요구한다.)
우선 이 수검자가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같은 만성질한을 십수년간 제대로 관리해왔는지 외래에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이 정도 기간 동안 만성질환을 관리 받지 않으면 60세가 넘는 근로자는 대개 일하다가 뇌경색이 생기거나 뇌출혈이 발생하거나 심근경색이 발생하곤 한다. 필자가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뇌심혈관계질환 심의회의에 들어가면 거의 모든 재해자가 이런 식으로 만성질환이 관리되지 않다가 뇌경색, 뇌출혈, 심근경색 등이 발생한 사례이다.
또한 이런 만성질환들을 잘 관리받았다고 하더라도, 뇌나 혈관, 심장 등에 알지 못하는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자칫 매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흉부나 복부 대동맥류 혹은 대동맥박리가 있는 수검자의 경우 이를 엑스레이로 잡아내기는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근데 이런 노동자들이 중량물을 드는 등 힘 쓰는 일을 하다가 이 대동맥류나 대동맥박리가 파열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즉사할 확률이 매우 높다. 이를 미리 간단한 혈액검사나 엑스레이 정도로 직업환경의학과 외래에서 잡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증상이나 징후 등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금 떠오르는 이런 잠재적 시한폭탄 같은 질환들이 (1) 갈색세포종 (pheochromocytoma), (2) 대동맥 박리 (aortic dissection), (3) 흉부 및 복부 대동맥류 (thoracic and/or abdominal aortic aneurysm), (4) 뇌동맥류 (cerebral aneurysm), (5) 뇌 동정맥 기형 (brain aortovenous malformation), 그 외 (6) 각종 뇌혈관 기형 및 이상, (7) 심혈관 기형 및 이상 등이 있다.
결국 한정된 검사만 수행할 수 있는 직업환경의학과 외래에서 어떤 환자의 업무적합성평가나 특정 질환에 대해 근무가 가능하다는 소견서를 써주는 것은 굉장히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외래 환경의 한계와 제한점을 회사도, 노동자도 알고 있어야 업무적합성 평가서나 소견서에 대한 오해가 없을 듯 하다. 만약 정말 정밀하게 이 수검자의 업무적합성 평가를 받고 싶으면 대학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 의뢰하면 된다. 대학병원에는 CT나 MRI, MRA 등 고도의 검사가 가능하다고 이에 기반해 수검자의 위험 정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정년연장 등 사회적으로 고령 근로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아무런 질병이 없어도 단지 65세가 넘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고령근로자 업무적합성 평가서와 같은 서류를 받으려고 하는 회사가 있다. 이 또한 고령 근로자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무슨 질병이 갑자기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대비하여 보험용으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소견서나 업무적합성 평가서를 받아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경험으로 보면 70이 넘는 고령의 근로자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갑자기 뇌심혈관계 질환, 뇌졸중, 뇌출혈, 심근경색 등으로 사망하거나 쓰러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따라서 이런 고령근로자가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사법부가, 검찰이, 경찰이, 고용노동부 및 안전보건공단 등 행정조직이 모두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고령근로자에 대해 보험성으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업무적합성 평가서나 소견서를 받으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결국 회사의 보건관리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면책용도로 이런 소견서나 업무적합성 평가서를 받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완전한 면책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직업환경의학과 외래에서 써 주는 소견서나 업무적합성 평가서에는 이런 평가의 한계점에 대해 명확히 기술해야 한다. 다음은 필자가 뇌심혈관계 질환 관련 업무적합성 평가나 소견서 말미에 쓰는 상용문구이다.
"다만 최근 업무상 질병판정 위원회 뇌심혈관계 질병 사례를 보면 뇌심혈관질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 세 가지 모두 만족시키지 않는 안정된 근무환경에서도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의 뇌심혈관질환이, 비교적 젊은 나이의 근로자에게서도 발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업장에서는 (1)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근무환경이 뇌심혈관질환업무상질병 인정 기준 세 가지 각각에 모두 미치치 않도록 업무 시간 및 강도, 업무관련 스트레스 등을 관리해야 하고, 7가지 업무부담 가중요인의 경우에도 관리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리가 사업장에서 다 이루어지더라도, 미처 알지 못하는, 치명적 뇌심혈관질환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단계 병변이 존재하는 경우, 업무 중 뇌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 갈색세포종 (pheochromocytoma), (2) 대동맥 박리 (aortic dissection), (3) 흉부 및 복부 대동맥류 (thoracic and/or abdominal aortic aneurysm), (4) 뇌동맥류 (cerebral aneurysm), (5) 뇌 동정맥 기형 (brain aortovenous malformation), 그 외 (6) 각종 뇌혈관 기형 및 이상, (7) 심혈관 기형 및 이상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전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이 적절히 관리되지 않은 경우에는 치명적 뇌심혈관계 질환이 갑작스럽게 혹은 서서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만성질환 관리 상태에 대해 현재 직업환경의학과 외래에서 완벽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 소견서는 과거의 관리상태에 대해서는 판단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환자의 과거력과 숨겨진 질환 등에 대한 완전한 평가를 원하시면 CT, MRI, MRA 등의 검사항목을 포포함하여 대학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 정밀업무적합성 평가를 의뢰하시는 것을 권고드립니다.
또한 이 소견서는 이 수검자가 업무 도중 업무상 뇌심혈관질병이 완전히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서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통상적인 로컬 병의원 직업환경의학과 외래 환경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 상기에 기술한 것처럼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소견서는 발행일로부터 6개월 정도 이후까지만을 제한적으로 예상하여 평가하였을 뿐 그 이후에는 새로 업무적합성 평가서를 받아야함을 알려드립니다.
참고) 뇌심혈계 질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세 가지
1. 증상 발생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병변 등이 그 자연경과를 넘어 급격하고 뚜렷하게 악화된 경우
2.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전 1주일 제외)간에 1주 평균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ㆍ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
3.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ㆍ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상태
1)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
2)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업무부담 가중요인)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①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② 교대제 업무
③ 휴일이 부족한 업무
④ 유해한 작업환경 (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업무
⑤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⑥ 시차가 큰 출장이 잦은 업무
⑦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3)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라도 2항의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업무의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한다.
*오후 10시부터 익일 6시 사이의 야간근무의 경우에는 주간근무의 30%를 가산(휴게시간은 제외)하여 업무시간을 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