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주변과 엮여있다는 것이 이론과 현실의 차이다
현실과 이론의 차이는 무엇일까. 현실은 주변과 엮여있다는 점이 다르다. 산업보건 (직업의학)에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새내기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는 근로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혈압이 매우 높은 건설현장 노동자 (60세 남자)에게 당신은 혈압이 높으니 혈압관리를 좀 받고 건설현장 근로에 투입되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지극히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판단이 회사와 노동자 양쪽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친다. 회사는 이 근로자가 해줘야만 하는 특수한 용접이나 특수한 작업이 있고, 노동자는 당장 자신이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의 생계가 막막하다. 이렇게 양쪽이 서로 일하길 원하는데, 의사가 이 사람에게 조금 걱정되는 건강장해가 있다고 해도 양쪽의 의사에 반해 근로제한 사후조치나 업무적합성에서 한시적 근무제한 이상을 내기가 쉽지가 않다.
결국 현실이란 것은 주변과 엮여있는 것이다. 이론을 배운 사람은 아직 이 엮임을 모른다. 현장에 가 보면 이 엮임이 보인다. 그래서 원칙대로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칙과 이론은 중요하고, 원칙을 알고 있어야 변칙적 대응도 가능하다.) 원칙을 모르면 안되지만 원칙대로만도 할 수 없다.
위에서는 한 가지 예를 들었지만 현장에 가보면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하나 더 들어보면 어떤 근로자가 야간작업 연관 수면장애가 매우 심각하다. 특수건강검진에서 야간작업 연관 수면장애는 세 가지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불면증, 수면의 질, 주간졸림증), 세 가지 문진표 모두에서 중등도 이상의 수면장애연관 증상을 보고한다. 이런 경우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업무적합성 평가에서 한시적 근로제한이나 혹은 사후관리에서 주간작업으로 작업전환 등의 조치를 내려도, 근로자와 회사 모두 이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 회사는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근무로 공장을 돌려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 근로자를 고용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근로자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소득이 필요한 상황이고 회사가 고용을 중단하길 원하지 않는다. 결국 이 여러가지 엮여있음을 고려해서 판단해야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론을 아는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이론 없이 실전 경험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의학지식을 하나라도 더 알면 환자 진료 시에 적용이 된다. 하나라도 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염두에 두게 된다. 보통의 의사들이 보지 못하는 가능성에 대해 보게 된다. 하지만, 이론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엮임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엮임을 고려해 회사와 근로자, 병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최적해를 도출해내야 한다.
필자는 지식을 익히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식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론 익히기). 하지만 실전 경험을 반드시 거쳐 주어야 진정 현실에 이런 이론들을 적용가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