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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Jun 09. 2021

혼자하는 재회

꿈을 꿨다. 요즘 자주 꿈을 꾼다.  삶의 미완의 관계가, 아무렇지 않은 듯 재현되는 꿈들이다. 만난  없던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다. 꿈속의 등장인물은 모두 연락을 드문드문하다가 어느 순간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다. 그들과 태연히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때로는 같은 테이블이 아닐 때도 있다. 그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메뉴만 가득한 식당에서 나는  건너 테이블의 그들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리고는 가끔은 그 어정쩡한 식사 뒤에 내가 말을 걸기도 한다.

“그때, 어떤 기분이었냐고”

우스운 가상의 식사를 포괄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혹은 그냥 내 생애 전반에서 그들이 차지했던 일부의 시간, 그 공유에 대해 굳이 묻는 것이기도 하다. 나를 잊었는지, 내가 나빴는지, 내가 미운지, 아쉬운지, 섭섭했는지.

내 삶은 미완으로 막을 내린 관계 투성이고 앞으로의 생애도 이런 방식의 개선 없는 반복일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앞으로도 비슷한 이별은 잦을 것이다. 애매하게 뜸해지는 연락으로, 굳이 찾아가지 않는 서운함으로, 그렇게 흐려지다가, 이젠 더 이상 안부를 묻기 이상해지는 그런 관계가 되겠지. 지인들 동료들 친구들 애인들 혹은… 어쩌면 가족들. 꿈에서나 재회하겠지, 그리고 어설프게 말을 걸 것이다.

괜찮았었냐고.

글쎄, 내 꿈이고 내 멋대로의 상상이니까 그들의 대답 역시 내가 멋대로 짜낸 대사다. 아마 화를 낼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이들은 화를 낸다. 아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괜찮다고 말해준다.

가끔 오늘 같이, 지금의 모습은 모르겠는데, 과거의 모습만 기억나는 사람이 꿈에 나오면, 그 옛 모습으로 대답을 해주는데, 그럼 그게 정말 기분이 안 좋아서, 착잡하고 서운하고 미안하고 아쉬워서, 죄책감이 들어서 괜히 잠을 설치고야 만다.

이런 지난한 삶을 하루씩  살고 있다. 이젠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는 수밖에 없어서, 후회가 엉겨 붙시간을 계속 잇고 있다.

다시 만날 날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바란다.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본질이 서운한 사람이고, 같은 사람을 두 번이나 서운하게 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꿈에서나, 이렇게 계속 꿈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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