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포틀랜드에 간 것이 시작이었다.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서는 미국과 유럽으로 짧으면 2주 길면 3달씩 장기 출장을 자주 보냈다.
교육을 받으러 갈 때도 있고, 일을 하러 갈 때도 있었다.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남편과 낯선 경기도 지역 어딘가에서 혼자 있어보니 우물에 갇힌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그런데 그게 한 달, 두 달이 되고 나니 혼자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나는 하루 종일 엄마와 통화한 게 전부인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타지역이라 가까운 친구가 없는 게 한몫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가기로 했다. 같이 있으려고 결혼한 거였으니까.
남편의 출장에 같이 가는 건 비행깃값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가서 지내는 동안의 경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여행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 꿈이었다.
이 기회에 내 꿈을 이뤄 보자. 생각했다.
포틀랜드에 먼저 가 있는 남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짐을 싸는데, 캐리어 반쪽은 그림 재료로 가득 찼다.
색연필, 노트, 물감, 연필, 지우개, 스케치북, 작은 스케치북, 큰 스케치북, 와콤 태블릿, 노트북까지.
정말 옷보다 재료가 더 많았다.
옷은 적당히 입으면 되지.
그렇게 17년 만에 미국으로 갔다. 떨리는 마음과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에 겁을 조금 먹은 채로.
LA 공항에 내리니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낯설고, 낯선 땅.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주 반가웠다. 오랜만에 왔네.
LA 공항에서 포틀랜드로 가는 국내선으로 환승을 하고 앉아있는데, 비행기가 기류로 흔들림이 굉장히 심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흔들림에 나는 속이 메스꺼웠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아주 평화로웠다.
아.. 이 정도 흔들림은 보통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서워하기도 멋쩍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손에 땀이 나게 쥐고 앉아 있었다. 포틀랜드 공항에 내리니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1시간 동안 시달린 기류에 멀미를 심하게 하고 있었고, 머릿속에 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반가움에 나에게 달려오는 남편에게 나의 첫마디는"내 가방.."였다.
두고두고 남편이 이일을 회자하며 나를 놀린다. 그때 자기가 얼마나 뻘쭘했는지 아냐며..
짐을 찾고 공항 밖에 나와 차를 타고 포틀랜드에서 40분 떨어진 힐스보로(Hillsboro)의 타나스본(Tanasbourne)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들판과 그 위에 큰 1층 건물이 하나씩 놓여있는 풍경이 보였다.
아 미국이구나.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