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는 말 그대로 파란 하늘과 초록 초록한 나무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넓게 펼쳐져 있는 하늘은 뭐든 할 수 있는 자유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너는 자유야. 너는 이 넓은 하늘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
나에게 이런 말을 속삭이는 듯한 풍경은 내 마음에 평온을 심어 주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게 즐겁고, 해 질 녘 길에 서서 바라보는 하늘이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커다란 하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면, 나는 저녁까지 혼자 있었다. 사람들이 낯선 땅에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 혼자 있는 게 심심하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아니요. 정말 좋은데요."
정말 좋았다. 이렇게 좋은 걸 나 혼자만 누리는 게 아까웠다. 엄마 생각이 났다. 탁 트인 곳을 좋아하는 엄마. 엄마는 늘 탁 트인 미국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미국은 땅이 넓잖아. 미국은 여유가 있지."
부모님께서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거주하셨었다. 10년을 사시는 동안 나의 어린 시절은 캠핑과 넓은 바다, 폭설, 반딧불, 아주 큰 나무들, 소나무 숲과 솔방울, 베이킹등으로 기억이 채워졌다. 아주 어릴 때만 잠시 살았는데도 좋고 행복한 순간이 많았는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한 기억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가. 이곳이 낯설지만, 친근했다.
나는 며칠 동안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먹은 사탕, 과자, 기억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형태와 냄새.
선명한 형태의 그것들을 발견하면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출장과 여행은 엄연히 달랐다. 그게 비록 같이 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도심이 아닌 좀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는데, 내가 쓸 차가 없었다.
한 달 장기 출장은 생활이다. 나는 타지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방해가 되면 안됐고,
누구에게 말하든,
“좋겠다~”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어서 불편한 것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철저히 남편과 나만의 생활이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하면 나 혼자가 된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도착한 첫 주는 모든 것이 도전이다.
집 밖으로 나가 점심 먹을 곳을 찾는 것이 그 시작.
가는 동안 지도 앱을 몇 번씩 보며 길을 찾는다. 리뷰도 본다. 기왕 먹는 거 맛집에서 먹어야 온 보람이 있지 않은가.
카페나 식당을 가면, 내가 주문하기 괜찮은 곳인지도 본다. 부담스럽지 않고, 또 올 수 있는 곳인지. 혼자 먹기 좋은 곳인지.
이 모든 조건을 통과한, 내 마음에 쏙 든 곳이 있었다. 바로 Mods Pizza.
이곳은 즉석 화덕 피자와 샐러드를 파는 곳인데, 에너지가 넘치는, 파이팅 있게 피자를 만든다. 야채가 신선하고, 무엇보다 피자가 담백하고 맛있어서 매일매일 갔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장소가 생기면, 그곳에서 지내는 기간이 조금 더 행복해진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드는 장소 찾기를 꽤 열심히 한다.
카페, 음식점뿐만이 아니라 하늘이 크고 예쁘게 보이는 곳, 산책하기 좋은 길, 책보기 좋은 장소, 감성이 채워지는 곳 등 한국에서 지낼 때 보다, 하루 중 시간을 내어 밖에 나가 좋은 곳을 물색한다.
힐스보로는 타운하우스처럼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지만, 붐비지 않는 아주 한가한 곳이다. 그래서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살기 좋은 외딴섬에 온 듯한 기분이 종종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남편이 퇴근한다. 집에 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물론 좋지만, 나의 하루가 보람찼다면 더 좋다. 자랑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건 그림을 그린 것, 글을 쓴 것, 이야기를 짠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을 때다. 혹은 발전했다고 느낄 때.
포틀랜드에 가기 전에 나는 그림이 딱 막혀있었다. 막 소설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끝냈는데, 그게 출간될 것 같지 않았다. 작업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도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외국에 가면 새롭고 열정적인 무언가가 마음에 생겨서 모든 것이 해결 돼는 철없는 판타지도 가끔 꿨다. 나에게 어떤 희망이라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포틀랜드에 와서 그리고 그 외에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분명 영감도 받고 새로운 것을 경험했지만, 나의 실력이 급속히 발전한다거나 새롭고 열정적인 무언가가 마음에 생기지는 않았다. 장소만 바뀔 뿐 나는 그곳에서도 또 노트를 붙잡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그림도 안 그리는데 아이디어는 열심히 짠다) 16컷의 그림책 혹은 이야기 콘티도 계속 그렸다. 아직 빛을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두 번째로 포틀랜드에 다시 갔을 때는 자기 계발서를 10권 정도 읽었다. 그때도 행동이 굼떠진 나를 반성하기 위해 하면 좋다는 것들을 실천하려고 나를 세뇌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때보다 지금 조금 더 부지런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