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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윤 Jan 06. 2021

3. 일단 노트를 펼친다.

떠오르던 안 떠오르던 일단 펼치는 게 중요해

3. 

힐스버러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책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혹은 글을 썼다. 

매일 3Page 모닝 페이지를 쓰고, 그 외에 끄적임을 하곤 했다.


20대에 처음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할 때는 나를 작가라고 소개했다.

작가의 그림, 작가적 사고, 작가의 생활, 작가 지인들, 작가 모임.

결혼하고 나서는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갔다.  얼마만큼 작업이 멋져야 작가일까?

직업적인 단어인데, 작가라는 단어에 나를 갇히게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저는 작가입니다.'라는 말을 의구심 없이 할 수 없었다.

그림을 비우고, 디자인을 비우고, 나의 모든 걸 비워냈을 때 나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물건도 만들고 싶고,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게 30대가 된 후 생각의 변화였다.


한동안 일도 없었는데, 한참 일을 할 때 그때는 더 작가 같지 않았다. 그림 공장 같았다. 서너 달 동안 집 밖으로 못 나간 적이 있다. 프로젝트로 받은 일이 많아서 하루하루 그걸 쳐내기 바빴고, (평생 못했던) 아침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서 일을 시작하고 자정까지 작업을 해서 넘기고 잠잤다. 잠자는 방에서 일해서 퇴근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일하고, 아파서 죽을 사러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에서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단지의 정자에 누워있었고, 주민들이 나를 둘러싸고 구급차를 부른 상태였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 해에 전시를 2번 정도 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가서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끄적임은 했지만, 그렇게 완성을 못 한 채 보낸 시간이 흘러 3년 정도 됐을 때, 나는 돌아 돌아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뭘 그려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사람들과 스터디도 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드문드문 들어오는 일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적는 것조차 부끄러운 그런 것이다.

그 사이에 친구들, 지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좋아하는 게 많은 나는 여전히 이렇다 내세울 게 없는 상태였다. 결혼 후에 작업실을 얻었는데, 그곳을 운영하시던 부부가 내게 그랬다. 자기도 좋아하는 게 많다고, 그래서 방황의 시간이 길었다고. 그 말이 공감이 가고 위로를 받았다. 내가 그 시기인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지내는 것에 부채감이 늘 목을 죄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출장을 가서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다. 드로잉을 하려고.

책상에 앉아서 드로잉을 하다가 나가서 그려보자 하고, 재료를 챙겨 나가서 그린다. 

'마음에 안 드네.'

생각하고 집에 들어가서 다시 그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머리를 환기시키러, 힐스버러의 나무들을 보러 산책하러 나간다.

차를 타고 둘러볼 때의 길을 머릿속에 그리고 상상하며 길을 걷는다.

이쪽으로 가면 뭐가 나올지, 저쪽으로 쭉 걸어가면 인썸니아 카페가 나올까? 상상하며, 걷는다.

걷다가 인썸니아가 나오면 커피를 한잔 사 마셔야지. 안 나오면 그냥 그 주변을 구경하는 거지.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이게 여행과 다른 점일까.

커다란 나무,  즐거운 사람들

나의 복잡한 머릿속과는 다르게 힐스버러는 평화롭고, 포근하고, 너그러웠다.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나를 검열할 필요도 없었고, 아무렇게나 입고 생얼로 돌아다니는 게 당연한 곳이었다. 내가 아무리 엉망으로 옷을 입어도, 나보다 더 신경 쓰지 않은 사람을 마주치는 게 재밌었다.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Good afternoon'이라고 말하는 것, 길을 건널 때는 차가 먼저 멈춰주고 다 건너갈 때까지 오래도록 재촉하지 않고 서 있는 것, 눈인사나 손짓을 하는 것,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문을 잡아주는 것 등의 사소한 배려가 고마웠다. 그런 배려를 받은 날은 내 마음속에 천사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는 좋은 생각을 했다. 사소한 다정함이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것들이 모이면 따듯한 하루가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정하고 귀엽고 착하다. 그런데 이런 소소한 배려를 할 여유가 평소에는 조금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쑥스러운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한 번씩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싶은 일들이 생기지만..

힐스버러가 워낙에 한적해서 사람들 마음에 여유가 더 있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내 마음과 정신건강에 좋았던 걸까. 밤에 잠도 아주 잘 자고, 사소하게 몸이 아프던 것도 다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맑은 얼굴과 맑은 눈동자가 거울 안에 있었다.

이런 눈빛이 나에게 있었구나. 지금 기분을 적어놔야지.

그렇게 또 노트를 꺼내고 글을 쓰고 옆에 작게 그림을 그렸다.


나는 작업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그림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달았다. 늘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좋아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나 보다. 

그림은 나보다 더 재능이 많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 무의식에서는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사람들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 누구나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았던 거다. 

지금 매일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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