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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un 10. 2024

17가지 취미 부자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

<이런 매일이라면 좋겠어>를 읽고

"엄마는 왜 피아노 안쳐?" 


이제 막 바이엘을 배우기 시작한 딸아이가 내게 한 말이다. 딸은 내가 어렸을 적 피아노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왜 피아노를 더는 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2년 넘게 피아노를 배웠다. 체르니 30번까지 진도를 나갔지만 학원을 그만두면서 더는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부모님이 거금을 들여 사주신 업라이트 피아노가 무색하게 나는 피아노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틀렸을 때마다 손등을 자로 맞아 벌게진 자국만 기억이 난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동네 백화점에서 연 사생대회에서 입선을 하기도 했지만 미술 학원을 그만둠과 동시에 연필과 붓을 내려놓았다. 그림에 흥미가 없었다. 


회사 입사 지원 시 취미란에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 감상' 혹은 '독서'를 꾸역꾸역 적어 넣었다. (취준생 시절 영화나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음에도, 아니 즐길 여유 따윈 없었지만 '취미 없음'보다는 뭐라도 적는 편이 나을 것 같았으므로.) 그러다 내 인생의 취미를 만드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나 보다 했다.


'취미,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문제없잖아?'라며 살아오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첫째 아이의 수영 수업 참관하며 수영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사실 나는 고3 때 수능시험을 치르고 난 뒤 문득 수영이 배우고 싶어 찬바람이 쌩 부는 추운 날 버스를 타고 먼 거리에 위치한 스포츠센터에 갔었다. 수영장 락스 냄새가 코 끝에 전해지자 가슴이 두근거렸고, 마음이 두둥실 부풀었다. 그러나 데스크 직원은 잔여석이 없다고 하여 허탈하게 되돌아왔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집 근처 교회의 레포츠 센터에 수영 수업이 있어 운 좋게 두 달간 자유형과 배영을 배웠다. (물론 속성으로 배운 내 수영 실력은 영 형편없었다.)


수영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지만 첫째 아이의 수영 수업을 보니 다시금 수영이 배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코로나로 휴관되었던 동네 스포츠 센터의 재개관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수영 수업은 추첨제로 뽑는다길래 공고가 날 때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신청 버튼을 눌렀다. 


나는 세 번의 실패 끝에 수영 수업을 듣게 되었고 현재까지 강습을 이어오고 있다.  작년 타계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노년에도 머릿속이 복잡할 땐 수영을 했다고 하는데 나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수영을 하고 싶다. 


주위 사람들은 종종 내게 어떻게 매번 새벽에 일어나 수영을 하러 가냐 묻는다. (나는 새벽 6시 반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적도 있었다. 수영장을 다닌 지 2년이 넘었지만 겨울에 컴컴한 어둠을 뚫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가는 것은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꼭두새벽부터 메가톤급의 에너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은 수영장뿐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수영'이라는 한 가지의 취미에 푹 빠져 지내는데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십여 가지가 넘는 취미를 가진 사람도 있다. 



<이런 매일이라면 좋겠어>의 반지현 작가는 무려 17가지의 취미를 배운다. 그중에는 어렸을 적 로망이었던 것도 있고, 홀린 듯 충동적으로 발을 들인 것도 있다. 


배웠던 취미를 모두 즐기게 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첼로는 몇 달을 배웠지만 활 하나를 제대로 못 쥔다. 뜨개를 배워 보겠다고 뜨개방을 기웃거리고 책과 뜨개 도안을 책장에 꽂아 놓고 수시로 째려보지만 앞부분만 반복하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실과 바늘을 던져버린다. 


댄스 수업은 또 어떤가. 원 데이 클래스로 참가한 수업에선 동작을 계속 놓쳐 급기야는 수업 도중 연습실 구석에 서있다 슬그머니 자리를 나온다. 그녀에겐 이러한 취미가 모두 '내겐 너무나도 먼 당신'과 같은 존재이지만 사랑해 마지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취미는 꼭 잘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형까지만 할 줄 알아도 수영할 때 행복하다면 그걸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물론 좋아서 꾸준히 하면 실력이 늘겠지만, 못해도 괜찮다. 


작가는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용기 그리고 지속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나니 내 깊은 곳에 덮어 두었던 요가를 향한 열망이 꿈틀 거린다. 새로이 마주할 순간이 두렵지 않고 기다려지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마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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