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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ul 01. 2024

크레스티드 게코 탈출 사건

도마뱀을 둘러싼 나의 세계


애들이 유치원생 일 때 꽤 많은 동, 식물을 집에서 키웠었다. 예전에 블로그에 기록해둔 거 보니 동물만 10종을 키웠다고 했는데 따져 보니 글을 쓴 이후로도 민물 소라게와 누에나방을 추가로 키웠었다. 사슴벌레는 '알-애벌레-번데기-성충'의 사이클을 2번이나 거칠 때까지 키웠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의 흥미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나 또한 일을 늘려 바쁜지라 구피만 돌보면 조용히 지내왔는데 둘째가 자기 친구들은 반려견, 반려묘를 키운다 우리도 키우면 안 되냐면서 조르기 시작했고 첫째는 어린이날이 되자 '생물'을 선물로 사달라고 떼를 엄청 썼다.


단호하게 고양이나 강아지는 안된다고 했더니 거북이를 이야기했다. 내가 거북이는 몸이 계속 자라고 수명도 너무 길다고 했더니 다 자라도 20cm 안되는 소형 거북 이종을 찾아서 이건 되지 않냐고 나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나는 거북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다가 어항을 들이고 물을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는 것이 귀찮아 긴긴 토론 끝에 도마뱀으로 타협을 봤다. 



그러고는 어떤 종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라서 파충류 및 도마뱀 책을 구해주니 자기는 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자이언트 데이 게코'를 키우겠다 했다. 


세 차례 파충류 숍에 전화하고 두 차례 방문해서 알게 된 사실이 '자이언트 데이 게코'는 귀뚜라미를 주식으로 먹으며, 무지하게 빨라서 (별명이 초록 섬광이다.) 핸들링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출처: 픽사 베이


귀뚜라미를 먹이를 주고 집에서 키워야 한다는 사실과 밥을 주다가 잽싸게 탈출하면 이 아이를 찾을 길이 희박하다는 사실로 거절했지만 첫째는 아주 끈질기고 자데게 (자이언트 데이 게코의 줄임말)을 사겠다고 했다. 



아이의 고집을 도무지 꺾을 수 없어 우려되는 사항들을 정리해서 질문지에 쓰라고 했고 이걸 바탕으로 전날 방문했던 파충류 숍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사장님은 다시 한번 "초보자가 키우기에 자데게는 어려울 수 있다. 처음 키우는 입장이라면 크레스티드 게코나 가고일 게코를 추천한다."라고 했다. 







자데게 못 키우게 한다고 울고불고하는 애랑 일단을 크레스티드 게코를 키우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데게를 키우는 걸로 타협을 봤다. 일주일간의 높은 언성과 울음이 오가는 맹렬한 논의 끝에 크레스티드 게코가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순간을 일기에 기록했다. (시키지 않았는데 이날 자발적으로 일기를 썼다.)










크레스티드 게코를 키우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



사육장의 레이아웃


크레스티드 게코는 사육장에 종종 세로로 붙어 있기 때문에 위아래로 긴 사육장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안에 구성품은 세로만 배치하기보다는 가로, 비스듬 히로 레이아웃 해 다양성을 주는 것이 좋다. 



<도마뱀 붙이 교과서>에 따르면 "교목성 도마뱀은 나무 위에서 서식하긴 하지만, 항상 상하 방향으로 붙어 있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옆으로 누워 있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백판을 뒤에 배치했다가 반으로 쪼개서 사선으로 배치하고 남은 나뭇조각은 아래 두니 도마뱀이 나무 뒤쪽에 붙어 있기도 하고 아래 숨기도 하며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통기성 측면에서도 뒤판을 막는 것보다는 사선으로 배치하는 것이 더 낫다.) 






좌: 과거, 우: 현재 레이아웃



슈퍼 푸드 편식



우리 화이트 (아이들이 크레스티드 게코에 붙여준 이름) 개인 브리더에게 분양을 받아 데려왔고, 태어나서 지금껏 슈퍼 푸드 판 게* 무화과 맛을 먹여 키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와서 동일 사료를 먹으니 잘 먹지 않았다. 


주사기로 직접 피딩을 하거나 먹이 그릇에 넣어줬는데 둘 다 잘 안 먹었다. 나는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예민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얼마 전 사료의 농도 때문에 안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마뱀붙이 교과서>에 "슈퍼푸드는 만드는 법 설명에 '케첩 같은'이라는 말이 있다. 이 부분에 집중하는 마니아들이 매우 많은데, 핵심은 섞자마자 케첩의 농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꽤 묽다고 생각할 정도가 딱 좋다. 



그 상태에서 몇 분 지나면 조금씩 씩 점도가 생겨 걸쭉해지고 먹이기 좋은 상태가 된다. 특히 핥는 힘이 약한 유체는 너무 진하면 바로 식사를 그만두는 경향이 있다. 


-중략-


 수분량을 조절해 액체의 농도를 바꾸면 개체의 반응이 이 바뀌는 경우도 많으므로 시도해 보아도 좋다."라고 되어 있어 슈퍼 푸드의 농도를 묽게 조절하니 이전 보다 더 많이 먹었다. 입 짧다고 뭐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농도 때문이었다니 화이트에게 꽤나 미안했다.  



크레스티드 게코 탈출 사건 


<낯선 원시의 아름다움 도마뱀>에 따르면 크레스티드 게코는 뉴칼레도니아 섬의 나무 위에 서식하는 수상성 (tree-dwelling) 게 콩류로서 야생에서는 낮은 관목과 덤불 사이에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면 활동하는 야행성 게코류다. 


낮에는 숨어 있거나 벽에 붙어 꿈쩍을 안 하므로 나는 화이트 (우리 집 아이들이 크레스티드 게코에 붙여 준 별명)이 활동성이 적은 줄 알았다. 그래서 별 걱정 없이 문 열어서 부채질하며 환기해 주고 너무 더운 날에는 문을 살짝 열고 내부 공기가 잘 순환되도록 선풍기를 틀어줬는데 깜박하고 문을 닫지 않고 잤다.


그리고 다음날.... 화이트가 사라졌다.




나는 아연 실색하여 자고 있는 첫째를 깨웠고, 출근 전인 남편과 함께 게코를 찾아 집안을 대대적으로 수색했다. 냉장고 뒤나 장롱 뒤틈에 있으면 어떻게 구할 것이냐면서 한 걱정을 하고 찾았다.



첫째에겐 헤드라이트를 주고 어두운 틈을 샅샅이 살펴보라고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사육장에서 1m 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화이트를 발견했다! 화이트는 책장 밑에 들어가 숨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화이트를 발견하자마자 꺼내려고 하는데 자기를 왜 건드리냐고 꽥꽥댔다. 우리 맘도 모르고 아주 편히 쉬는 중이었나 보다.)



도마뱀을 둘러싼 세계


우리 집 화이트를 보고 있으면 쥐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공룡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리부리한 눈과 발톱 그리고 꼬리를 보면 그렇다. 그런데 화석이 되어버린 공룡을 정말로 파충류로 분류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파충류라고 하는지 늘 궁금했었다. 


그러다 어제 해남 공룡 박물관을 갔다 공룡은 골반 구조와 형태에 따라 새와 같은 모양의 조반목인지 도마뱀과 같은 용반목 인지로 나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용반목으로 분류가 되는데 내가 키우는 도마뱀의 먼 조상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출처: 해남 공룡 박물관


도마뱀을 키우면서 도마뱀의 번식과 부화 과정을 새롭게 배웠다. 도마뱀 도감에 따르면 도마뱀의 알은 적정온도보다 높으면 암컷이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2015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는 기후변화가 도마뱀의 성별을 바꾸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호주 캔버라 대학교 연구팀은 턱수염 도마뱀을 조사했는데 평소 기온 변화의 민감한 도마뱀이 따뜻한 날씨에서 더 많은 암컷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밝혔다. 


기후 변화로 인해 수컷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이는 멸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하니 지구 온난화의 영향력이 더 크게 와닿았다. 


덧, 도마뱀뿐 아니라 악어, 거북이 등 모든 파충류가 성별 결정에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크레스티드 게코를 키우며 인류가 파충류와 오래도록 공존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개인 차원에서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낯선 원시의 아름다움 도마뱀, 문대승 정성곤 저, 씨밀레 북스

도마뱀 붙이 교과서, 니시자와 마시시 저, 허문 

사이언스 타임스 온도에 따라 수컷에서 암컷이 되는 도마뱀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Trend.do?cn=SCTM00221692

티라노, 넌 좀 뜨거워… 스테고, 넌 좀 차갑고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530021005&wlog_tag3=naver

도마뱀 성별이 바뀐다...기후 변화, 의외의 부작용 

https://www.segye.com/newsView/20221226510215?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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