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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Apr 12. 2024

초등 직업체험관과 진로 고민

중년의 방황

그간 직업체험관은 키즈카페 정도로 생각하여 주말 나들이 리스트에 넣지 않았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의 성향 탓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다 첫째가 반 친구들은 다 가봤는데 자기만 못 가봤다고 아우성 해 잔여 석을 어렵게 구해 다녀왔다. 시설은 훌륭했고 프로그램도 다채로웠다. 키즈카페와 직업체험이 반씩 섞여 있어 유치원생부터 초등 저학년의 흥미를 끌 수 있겠다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둘째는 오늘 체험한 프로그램 중 수의사 체험이 유독 재미있었다면서 꿈 리스트에 수의사를 추가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게 물었다. "엄마는 어렸을 적 꿈이 뭐였어?" '장래희망 칸을 거쳐간 수많은 꿈 중 듣기 적절한 것 하나를 골라야 하나?' 고민하다 그다음 질문을 듣고는 벙어리가 되었다. "엄마는 지금 꿈이 뭐야?" 


나는 꿈을 좇다 어느샌가 현실에 타협했다. 현재는 이것저것  도전하고 부딪쳐 보는 중이다. 인생이 원래 알 수 없게 흘러가는 거지 하다가도 어쩔 땐 너무 막연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청소년 자료실에서 만난 한 권에서 예상치 못한 위안을 얻었다. 



"아빠는 왜 생화학과에 갔어?" 

큰딸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물었다. 아, 이 아이가 장래를 고민하고 있는가 보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많은 장면이 지나갔다. '뭔가 근사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내 진로를 결정하게 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과는 달리 내가 뱉은 말은 아뿔싸, "학력고사 성적이 딱 맞더라고."였다. 

미안하다, 내 딸아. 옆에서 이 장면을 본 아내가 잠자리에서 다그쳤다. "진로를 탐색하는 아이한테 해 줄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어? 자기에게는 별이나 공룡 같은 추억이 없었어? 

<소년 소녀, 과학 하라!>  p.31,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편


저는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는 고인류학자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고인류학 박사 1호'라고 불리지만, 사실 저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과학에 대해서는 매우 추상적이고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리, 화학, 생물, 뭔가 어렵고 복잡하고, 외울 것도 많고, 익혀야 할 것도 많은 과목이었습니다.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제 머릿속에서의 과학자는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혼자 골똘히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사람일 뿐이었어요. 

고등학교 때에는 문과였고, 대학교는 인문대학에 속한 고고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뼛속 깊이 문과인 사람인 셈입니다. 지금 저를 보고 전통적인 의미의 과학자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p.74, 이상희 고인류학자 편


과학자의 꿈을 키우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은 그다지 없다. 평범하게 공부하고 시험 보고 놀면서 지냈다. 고등학교 때 문과와 이과 선택을 위한 적성 검사에서는 양쪽이 거의 똑같은 점수가 나왔다. 역사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큰 고민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남학생의 약 70%가 이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p.93 이강환 천문학자 편 




결과적으로 천문학자가 되긴 했지만, 그 과정을 돌아보면 과학에 대한 대단한 열정이나 왕성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단한 열정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만이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과학자가 극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과학자가 될 사람이 어릴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천재만 과학자가 된다면 세상에 과학자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미래의 진로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미래에 어떻게 쓰일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천문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나는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과학자가 되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10년 후에 어떤 일들이 필요하게 될지 어떻게 예상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며 한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과학자도 필요하지만 나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며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과학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과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과학의 숲은 그만큼 더 다채롭고 풍성해지는 것이 아닐까?

p.97 이강환 천문학자 편 


과학 분야는 타고난 호기심과 열정을 강조하지만 어쩌다 과학자로 사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과학계는 더 풍요로워진다는 말에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은 내게 먼 과학 책을 더 들여다볼 용기도 함께 말이다. 


+ 이 책엔 과학자들이 반한 과학 이야기도 있다. 그들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과학 영화, 책, 공식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니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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