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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May 25. 2021

엄마들의 비장한 조별 모임

2020년도 마을공동체 사업 도전기 #02

예약해 둔 디지털 도서관에 여자 여섯이 모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모르는 이들과 멋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마스크를 쓴 겉모습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괜한 오지랖인가 싶어 말을 아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누군가 말을 먼저 시작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찰나 누군가 말을 꺼냈다. 


"다들 잘 지내셨어요?"

 

바로 수진 씨였다.


"일단 귀한 시간을 내어 모임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은 마을공동체 주민공모 사업 때문이에요. 사업 계획서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예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는 곧이어 사업계획서를 노트북에 띄웠다. '공모사업 개요'라는 글자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오늘이 2월 10일인데 접수 기간이 21일이니까 11일이 남았어요.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다들 하시는 일이 있으니까 가능하면 오늘 큰 틀을 잡고 가는 게 좋겠어요."


내 평생에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는 들어봤어도 '사업 계획서'는 처음이었다. 내가 아는 사업은 10년 전 아빠가 회사를 다니시다 이놈의 회사 못해먹겠다고 하면서 '사업이나 하겠다.'라고 입에 올린 게 전부였고, 그 마저도 '사업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요?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 감사하게 살아요.' 라며 입막음 한 엄마의 해석이 다였다.


이는 곧 세대를 건너 나와 남편에게도 전해졌는데, 어느 날 엄마는 절에 가서 점을 보고 오시고는

"사위는 사주에 사업운이 없데. 사업한다고 하면 뜯어말려."


라고 하셨다. 나는 안중에도 없었으면 물론이고.


하얀 바탕 화면에 검은색 글씨를 보고서야 우리가 준비하는 게 내가 팔자에도 없는 마을 공동체 주민 제안 공모 '사업'이었고,  제출서류에 사업계획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메모해야 할 게 있으면 제가 적을게요. 불러 주세요."

수진 씨의 왼편에 앉은 여성이 이야기를 했다. 


"고마워요."


"음 저희가 가장 먼저 어떤 사업을 할 건지 정해야 해요. 아 모임명도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있는데... 이게 최소 인원이 10명이에요. 근데 저희는 총인원이 6명이에요. 4명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혹시 아시는 분 없어요?"


"......"


블로그가 슬슬 지루해지던 나는 이 사업을 따내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뭐라고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멤버 영입에 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 동네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좁고 얕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주저 하자 수진 씨의 오른편에 앉은 여성이 말문을 열었다. 


"제가 아는 사장님이 한분 있긴 한데 관심을 가지실지는 모르겠어요. 연락은 한번 해볼게요."

"좋아요 좋아. 일단 가장 중요한 게 10명을 모으는 거예요. 10명을 모으지 못하면 사업 자체를 진행할 수가 없어요."


수진 씨가 덧붙였다.


"근데 성별이 꼭 여자일 필요는 없잖아요. 남편을 넣으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인원수를 맞추는 게 중요하니까 일단 누구라도 넣어요."


여기저기서 인원 충원에 관한 의견이 터져 나왔다.


"여기 보면 모임 구성원은 가족으로 구성 불가라고 되어 있어요."

수진 씨는 출력해 온 사업 계획서에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말을 했다.


"가족 구성원은 안되지만 친척은 가능할 것 같은데...... 혹시 웅비시에 거주하거나 웅시에 직장을 둔 친척분들은 없어요? 지원 씨 남자 친구 여기 회사 다니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주소지가 여기 아닌가?"


"아 아니에요."

그녀가 손사례를 쳤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기혼자인 줄 알았는데 미혼자도 섞여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다들 혹시 아시는 사람 없어요?"

수진 씨가 다시 한번 물었다.


"모임에 참여는 안 하고 이름만 올려도 되지 않아요? 아는 분 있는데 시간이 되실지 모르겠어요. 명의만 빌려달라고 하는 건 될 것 같은데..."


아까 메모를 하겠다던 여성이 대꾸했다.


"명의만 빌리는 것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이거 누가 뭘 하는지 일일이 적어서 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원 씨도 거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인물이었다.


"모집은 각자 아는 사람에게 연락을 돌려 물어보고 피드백 오는 걸 보고 다시 이야기해요."

"좋아요."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멤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업 계획서는 하나도 못 채웠네."

수진 씨가 이야기했다.


"여기서 하긴 어려울 것 같으니 사업 계획서는 각자 채운 다음에 다음번에 만나서 취합하는 게 어떨까요?"

내가 의견을 냈다.


"좋아요. 그럼 이 파일을 카톡방에 올려놓을 테니 다들 앞부분을 채워서 다음 시간에 다시 의견을 나눠요. 다들 장 시간 고생 많으셨어요."


의자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학부 때 했던 조별 모임이 머리를 스쳤다. '졸업한 지 7년 만에, 그것도 엄마들과 조별 모임을 다시 하게 될 줄이야.'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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