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목표없는 목포

갑자기 목포

by 챠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여행을 갈 때 시간 단위로 쪼개서 계획을 짰다. 9시 아침(00 식당 혹은 간단하게 싸가지고 간 음식), 10시 관광지, 13시 점심(00 식당에서 정식) 14시 카페(메뉴:아인슈페너) 등 이런 식으로 정리해 두었다. 점심을 먹으려는 식당은 2~3곳 정해서 대기가 있거나 그 외 상황이 닥쳐도 문제가 없도록 차선책을 마련했다. 관광지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거부하거나 날씨에 따라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올 수 있으니 다양한 방안을 준비했다. 그에 따라 식당이나 카페도 대략 알아봐서 어떤 변수가 생겨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일정 혹은 마음, 무엇이 단단해지길 바란 건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잘 모르겠다. 내 여행 취향, 아이의 취향, 남편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서 짧은 일정 안에 욱여넣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계획을 세웠지만 내가 관심 있는 장소나 좋아하는 취향의 음식점은 거의 넣지 않았다. 무사히 일정대로 여행을 마치는 것만이 내 여행 목표였다.


어느 순간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패키지여행을 가보지 않은 이유는, 짜인 일정대로 움직이기 싫어서였다. 신혼여행도 비행기 티켓과 숙소, 큰 일정만 여행사를 통해 잡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다녔었다. 로컬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발길 닿는 대로, 그날의 기분에 따라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 나를 가두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내 표정이 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많이 다니니까 피곤해서 그래,라고 생각했는데 장소를 바꾸어 나를 가둔 셈이었다.


석가탄신일 대체 휴일을 2주 앞두고 여행을 가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어디를 가야겠다고 장소를 특정지은 건 아니었다. 친정 가족과의 여행을 가자는 것 하나만 정하고 동생과 상의를 했다.

"엄마, 여행 갈래?"

"좋아. 어디로 가게?"

"표 있는 곳으로."

처음에 알아본 곳은 부여.

버스를 타고 가서 렌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은 숙소를 알아보는 일.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빈 숙소가 없었다. 장소를 바꾸자. 기차를 타고 가면 조금 더 멀리도 괜찮으니까.

5명 왕복 기차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곳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가는 날 오후 3시 30분 기차표, 오는 날 10시 40분 표를 구했다. 목적지는 목포.

목포 시내에 호텔 예약을 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우리 목포로 결정됐어."

"목포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잘 됐네!"

엄마가 예전에 목포를 가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가족 중 아무도 목포를 가본 사람이 없었다.

처음 계획이 느슨했던 것처럼 일정도 그렇게 짜려고 했는데 동생이 여행 일정표를 짜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발길 닿는 대로만 갈 순 없었다. 마침 우리가 여행 가는 날,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목포 해상쇼 날짜와 겹쳤고 근처 신안 퍼플섬 축제기간이었다.

목포에서 도착한 날, 저녁을 먹고 해상쇼를 봤다. 가볍게 보고 오려했는데, 식당 앞을 나서는 순간 바다에서 불꽃이 터졌다. 바다에서 불꽃쇼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본 적은 처음이었다. 잠깐 아늑한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 신안에서 우리는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보라색 옷이나 소품을 착용하면 입장료가 무료라기에 챙겨 입고 간 건데 우리처럼 잘 맞춰 입고 온 사람은 없었다. 섬에서 신안군청 가고 싶은 섬지원단 팀장님이 우리를 보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똑같은 연보라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눈에 띈다고 하면서. 서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가족사진이 생겼다.

많은 비 예보가 있었는데 우리가 집에 돌아가는 날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대신 중부지방에 비구름이 머물러 있어서 그곳에 많은 비가 내렸다. 우리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 목포에 비가 왔다.

평소와 달랐던 여행이 행운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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