챠챠
체감온도 40도, 연신 핸드폰에서 안전문자 알람이 울린다. 어딘가 몸을 편하게 해 줄 공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더운 날에는 집이 가장 편한 곳인데 혼자 있을 땐 에어컨을 틀기가 머뭇거려진다. 조금 참아볼까.
전기세와 기후 위기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떠올랐다. 조금 더워서 에어컨을 틀다가 지구가 더워진 게 아닐까. 그냥 더위라고 표현하기에는 약하다. 좀 더 강한 단어가 필요한데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누구와 같이 있을 때는 에어컨 트는 게 아무렇지 않은데 혼자 있어서 그런지 별 생각이 다 든다.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문을 열고 불을 켰다. 실내가 환해지자마자 내가 한 일은 에어컨 틀기.
여전히 나는 혼자 넓은 공간에 있었고, 실내는 훅한 기운이 느껴졌다. 잠시 후 도서관에 책 읽으러 올 아이들을 위하여 미리 시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도서관 문을 여는 시간보다 앞서 아이들이 찾아왔다. 도서관 문을 여는 시간은 1시다. 아마 아이들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루해서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폭염을 피해 주차장으로 걸어서 도서관까지 들어오면 집만큼 시원한 도서관 문이 열려있다.
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성인과 어린이 도서가 함께 있는 곳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가 여러 차례 책을 추천해 주지만 아이는 선뜻 집어 들지 않았다.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옆에 서서 책을 보는 척하며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조금 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아, 깜박하고 이곳에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어린이도서실과 책 읽는 공간에만 틀어뒀던 것이다. 나는 슬쩍 에어컨 버튼을 눌렀다. 천장을 바라보니 소리가 먼저 들리고 전원이 켜졌다.
"이 책은 슬퍼."
책장 앞에 선 아이가 말했다. 초등 중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책을 안 읽었는데 어떻게 알아?"
"안 읽어도 알아. 표지만 봐도 벌써 슬퍼서 눈물이 나는데."
나도 그랬다. 에어컨 버튼을 누르면서, 자꾸 녹은 얼음을 지켜보는 북극곰이 생각났다.
남극빙하가 녹아 한반도 온난화가 더 심해진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한여름을 느끼며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생각한다. 우리는 몇 년 새 바뀐 환경과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화 속에서 살고 있다. 책을 펼쳐 보지 않아도, 슬픈 예감이 들었던 아이처럼 머지않은 미래를 겪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2일 전 기사에서 미국 플로리다 바다 소식을 읽었다. 바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시원함은 어디 가고 목욕탕이라는 헤드라인이 시선을 끌었다. '38.4도, 뜨거운 바다' 바닷속 산호초는 죽어갔다. 현재 우리 동네는 폭염경보로 빨간 불이 떴다. 33.7도. 플로리다 바다는 더 뜨겁다.
"내용을 안 봐도 뻔해. 당연히 읽으면 슬플 거니까, 나는 읽을 수가 없어."
여전히 아이는 책장 앞을 서성였다. 엄마는 이미 책을 골라 자리에 앉았고, 아이만 서서 책 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원한 도서관이 반가운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바닷속 산호가 울고, 빙하가 우는데 더위를 참지 못하는 자꾸 에어컨에 손이 간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한 곳에서 에어컨을 쐬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에어컨 기계가 덜 돌아가는 셈이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이러나저러나 더 슬퍼질 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