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에 남은 유일한 서원, 안곡서원

여섯 번째 마을여행_안곡서원

by 챠챠


20200611_145905.jpg 안곡서원_외삼문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백운동서원’이야. 1543년에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웠는데, 고려 시대 학자인 안향(安珦)의 제사를 지냈던 곳이지. 안향은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이래.

안곡서원은 화성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원이지. 화성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어.

서원과 향교는 모두 중등교육 기관이야. 교육의 장소이자, 모범이 될 만한 학자의 제사를 지냈지. 서원은 ‘선현’을, 향교는 ‘성현와 선현’을 모셨어. 학생들을 가리키는 말도 달랐어. 서원은 ‘원생’, 향교는 ‘교생’이라 불렀지.

안곡서원에는 원래 안곡사가 있었어. 현종 7년(1666년)에 남양 현감 민시중이 박세희를 기리기 위해 지은 곳이었지. 현종 9년(1668년)에 박세훈을, 1697년부터는 홍섬을 함께 모셨어. 경종 1년(1721년)에 임금이 ‘안곡서원’이란 이름을 붙여주었어. 영조 5년(1729년)에는 서원의 이름을 도로 거두어들인 적도 있었는데, 원생들이 다시 임금에게 청해서 이름을 돌려받았어.

매송면 천천리에는 송시열을 모셨던 매곡서원이 있었어. 매송면 원리에도 조선 중기 문신 조익, 그의 아들 조복양, 손자 조지겸을 모시던 명고서원이 있었지.

조선 시대에 서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문제도 생겼어. 서원이 양반과 사대부들의 권력기관이 된 거야. 교육보다 붕당(뜻이 같은 정치 모임) 만들기에 힘을 쓰고, 서원 주변에 사는 백성들을 괴롭히기도 했어. 결국, 보다 못한 고종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나섰지.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정리하라는 지시까지 내렸어. 안곡서원도 고종 8년(1871년)에 헐렸지만, 1976년 남양 지역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사람들이 다시 지은 거야. 매곡서원은 자리에 위패만 묻어두고 복원하지 못했지. 명고서원은 겨우 주춧돌 몇 개만 남아있어.

외삼문을 지나면 보이는 건물은 원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이야. 강당 뒤로는 내삼문이 있지. 안으로 들어가면 선현인 박세희, 박세훈, 홍섬을 모시던 사당이 있어.

20200611_150055.jpg 안곡서원_내삼문

박세희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야. 박세훈은 박세희의 큰 형인데 효자로 이름이 자자했대. 아버지 무덤 가까이에 집을 짓고 3년간 지내기도 했지. 안곡 서원 옆에 상주박씨 묘역이 있어.

홍언필의 아들인 홍섬 역시 조선 중기의 문신이야. 홍섬, 홍언필 등의 묘가 있는 남양 홍씨 묘역은 서신면 홍법리에 가면 볼 수 있어.


▶ 마을여행 ‘안곡서원’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로 860-35 (상안리 585)

▶ 함께 둘러볼 만한 곳

-심곡서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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