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경계, 자연과 어우러짐

여섯 번째 마을여행_안곡서원

by 챠챠
20200611_145917.jpg 안곡서원_내삼문

상안삼거리에서 조금 더 들어가니, 옆으로 난 길이 있었다. ‘안곡서원’이 새겨진 비석을 보고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굽은 길을 따라 모습을 드러낸 홍살문이 보였다.

홍살문 앞은 넓은 공터다.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목적지는 안곡서원이지만 마을의 풍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드문드문 떨어진 집 사이에 논과 밭, 전봇대와 어지러이 흩어진 전선,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낮은 산이 보인다. 마을마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특유의 기운이 있다.

여름 한낮의 시골은 참 조용하다. 그래서 참 낯설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골의 낮은 이상하리만큼 인적이 드물다. 길을 걸어도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른 새벽부터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은 한낮에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홍살문 앞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하마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쉽네, 남양향교의 하마비와 비교해보고 싶었는데.


20200611_145805.jpg 안곡서원 앞

보호수는 있을까. 서원 가까이 가보니 양쪽에 나무가 있었다. 가로수보다 조금 작은 은행나무와 소나무다. 주변을 천천히, 자분자분 살펴봤다. 홍살문 바깥쪽 낮은 언덕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서원을 내려다보는 커다란 나무.

“있다가 저 나무에 가보자.”

서원의 외삼문에는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전통부채에 새겨진 모양과 비슷하다.

안곡서원의 현판 위에 있는 단청은 자못 화려하다. 내부에는 두 개의 건물만 있었다. 원생들이 공부했던 장소인 ‘강당(講堂)’이 먼저 보인다. 그런데 세 개의 창이 있는 벽만 보였다. 만나자마자 뒤통수를 먼저 보는 꼴이다. 현판도, 문도 뒤를 돌아가야 있었다. 독특했다. 이유가 뭘까.

원래 서원에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도 있는데, 이곳에는 없었다. 아마 복원과정에서 뺀 듯하다.

양쪽의 돌계단을 올라가니 내삼문이 보인다. 내삼문도 화려하다. 태극무늬도 새로 칠해진 것 같다. 열려있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봤다. 선현 박세희, 박세훈, 홍섬을 모시던 ‘사당(祠堂)’이 있었다. 따로 현판은 없었다.

마을 여행을 다니면 초록빛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색은 오묘하게 다르고, 은근히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나무에 시선이 먼저 향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사이에는 항상 ‘담’이 있었다. 담이라는 건 일반적으로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던 건, 자연을 막아서지 않는 낮은 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던 조상들의 마음가짐이 드러난 것이다. 막힌 듯, 막히지 않은 듯, 공간을 최소한으로 구분하여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속뜻.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 서 있어도 건물 내부가 보였고, 안에서도 바깥을 살필 수 있었다.

20200611_150453.jpg 안곡서원 근처 보호수_은행나무

눈여겨 봤던 커다란 나무로 가봐야겠다. 홍살문을 지나 좁은 언덕을 올랐다.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크기에 더욱 압도된다. 정말 크다.

“와아……!”

한동안 나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1982년 10월 15일에 지정된 은행나무 보호수였다. 지정 당시 수령이 410년이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448년 된 나무다. 안곡서원보다 먼저 이 자리에 있었던 셈이다.

마을의 큰 바위나 나무를 서낭당으로 모시는 문화가 생각났다. 이 정도 나무라면 식물의 범주에서 벗어난, 소원 하나쯤 아무렇지 않게 들어줄 법한 존재가 아닐지.

나무에서 바라본 서원의 느낌은 또 달랐다. 사람이 만든 서원은 이질감 없이 자연에 둘러 쌓여있었다. 나무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원, 서원에서 보이는 나무.

키가 작은 담은 자연을 묵묵히 이어주고 있었다. 경계하듯 경계하지 않는 어우러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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