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유튜브를 하겠다는 시기가 있었다. 누구는 한 달에 몇백만 원을 벌어들인다면서 연일 화제가 되었고,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과 월급쟁이의 삶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봐도 무슨 용기였을까.
유튜브를 시작합니다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면,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영상부터 내가 생각하기에 왜 ‘시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영상을 다 찍어놓고, 내 얼굴을 보며 편집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참으로 고역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핵노잼’ 영상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렇게 잘생기지 않은 외모에, 수려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닌 영상을 잠을 쪼개가며 만들었다. 그저 카메라를 보고 말하고, 그걸 컷 편집한 뒤에 올릴 뿐인데, 왜 이렇게 시간은 오래 걸리는 것일까.
내가 개발자이기 때문에
그 ‘시작’ 영상에서 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내가 개발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나는 개발자로 살아오면서 큰 변곡점을 겪었다. 바로 아이폰이라는 세상을 뒤집은 기기의 출현이었다. 원래도 개발자였지만, 더 재밌고 도전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미국 WWDC(애플이 개최하는 최대 개발자 행사)에 가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분위기는 앱이라는 걸 만들면, 모두가 한 달에 몇백만 원을 벌어들인다는 이야기로 연일 화제가 되었던 시절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바로 요즘 누구나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하듯, 당시에는 모두가 ‘앱’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도전했던 나는 나름의 성과도, 목표도 이루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도전 자체의 즐거움을 잘 알았고, 그 도전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게 됨 또한 알고 있았다.
망한 촬영 이야기도 올려봤다. 결과는 더 망했다.
세상은 어제보다 조용하다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당장이라도 무엇인가 이뤄질 것처럼 기대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인들과 SNS에 소개한 그 영상의 조회수는 100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미 날 알고 있는 친구들이 내 영상의 팬이 된다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게 외로운 길을 가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유튜브 채널을 홍보하는 철면피가 되어야 하며, 또 가끔씩 달리는 외모를 비하하는 악플에도 초연해져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어제보다 더 조용하다. 그 긴 터널이 외려 사람을 위축시키고, 도전을 포기하게 만든다.
호기롭게 라이브방송도 했었지.
꾸준한 노력. 그리고 결과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하고서 나는 주로 개발자로서 살아온 인생의 커리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싶은 것보단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당 1개 이상의 콘텐츠를 올리고자 마음먹었고,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내 유튜브 채널은 어떻게 되었을까?
꾸준히 4개월쯤 올렸을 때였을까. 갑자기 영상 하나의 조회수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구독자는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발자로 분류된 내 채널은 개발자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10일 현재에 구독자는 약 2300명이 되었고, 첫 번째 목표로 평가받는 수익 전환 채널이 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벌어들인 수익은 아직 100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내 영상중 최고 조회수. 5.2만 고생했던 첫직장 이야기
결과 말고 그 과정
결과로 평가해보면, 절반 정도의 성공을 거뒀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수익을 붙일 수 있는 목표치를 이뤘고, 구독자가 늘지 않아서 걱정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구독자수를 매일 보지 않아도 되는 초연한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과정의 나는 참 녹록지 않은 길을 지나왔다.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 더 하기엔 쉽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주말에는 항상 영상을 찍고 편집하며, 주중에는 이번 주에는 어떤 걸 만들어낼까 고민했다. 혼자서 촬영하는 외로운 작업을 하면서 내가 왜 지금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수백 번도 더 했던 것 같다.
잠시 멈춘다는 것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피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도 피해야 했으며, 그러면서 나를 어필하고 내가 마치 괜찮은 사람인 것을 표현하는데 거리낌 없어야 했다. 그렇게 반년 간 30여 편의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서,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했다. 개발자로만 살아가던 내 삶에서 개발에 대한 공부가 소홀해지고, 그것이 회사생활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서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었다. 잠시 멈춰야 했다. 그렇게 내 유튜브는 잠시 멈춰있다. 본업은 소중하니까.
내가 올린 마지막 영상. 벌써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다시 시작
그렇게 멈춰진 내 유튜브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다시 6개월을 쉬어야 했다.크리에이터의 삶을 잠시 맛본 대가는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개발자로의 삶 자체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 그리고 내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