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로 채워진 유럽 여행

part.1

by 재연

2018년 여름, 이맘때쯤 친한 친구 둘과 셋이서 유럽여행을 떠났었다. 유럽여행은 꽤 많이 다녀본 편인 나지만,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간 여행들이었기 때문에 새로움 반, 걱정 반이었다. 게다가 함께 하는 두 친구는 소문난 길치들. 건물을 들어갔다 나오면 방향 감각이 리셋되고 길도 모르면서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꺾어버리는 용감한 친구들이었다. 그 사이에 낀 길눈 밝은 나는 자연스럽게 선두에 서서 길을 찾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길에 밝다 보니 어딜 갔다가 어딜 가야 가장 효율적 인지도 내 판단 하에 결정되었고, 그래서 여행 내내 일정 짜기도 내 몫이 되었다. 막중한 책임감과 설렘을 안은 채 어느새 여행 D-3 새벽.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먹어도, 차가운 수건을 이마 위에 올려도 도통 열이 내릴 기미가 안 보였다. 다른 증상은 아무것도 없으니 이러다 낫겠지, 하고 버텼다. D-2 새벽, 또 열이 나서 밤새 잠을 설쳤다. D-day 새벽, 열이 나고 이젠 오한까지 겹쳤다. 코도 안 막히고 목도 안 따가운 걸 보니 평소에 걸리는 감기랑은 분명 다르다. 당장 그날 오후 비행기인데 큰 일이다. 약도 안 드는데 이대로 가다간 여행 내내 즐기지도 못하고 숙소에만 박혀있어야 할 환자가 될 게 뻔하다. 아침에 동네 병원으로 열리는 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갔다. 결과는? 알 수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선생님 저 몇 시간 후에 비행기 타야 하는데요? 이 상태에서 여행을 가려고 하냐고 혼쭐이 났다. 정 급하면 응급실이라도 얼른 가보라 한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상황,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내 인생 첫 응급실, 생각보다 차분하고 조용했다. 내가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본 응급실의 모습은 새벽이었을 테니, 평화로운 낮의 응급실의 모습은 꽤 낯설었다. 채혈을 하고 간단한 검사를 몇 가지 한 후, 의사 선생님 왈, 염증 수치가 갑작스럽게 높아져 생긴 증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염증인지는 더 정밀한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시간이 없었다. 급한 대로 약 처방을 받고 집으로 가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갔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이미 상당한 돈을 지불해버린, 그리고 몇 달 전부터 고대하던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인생 첫 응급실을 유럽행 비행기 타기 직전에 가다니, 이건 시트콤이다. 어떻게든 여행 가겠다는 딸내미 때문에 같이 혼비백산으로 마지막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뛴 우리 엄마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첫 행선지였던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는 고통 그 자체였다. 우선 11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부터 좀이 쑤셔 미쳐버리겠는데, 오한이 또 와버렸다. 그것도 세게. 아무 곳에서나 잘 자는 친구는 옆에서 코까지 골면서 잘도 자는데, 나는 모두가 반팔을 입은 그 여름, 겉옷을 4겹을 입고 담요도 두 개나 덮었는데도 추워서 한 숨도 못 잤다. 이륙한다는 방송과 함께 창문 밖으로 육지의 모습을 보았을 땐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도착을 하고 나서 낮에는 컨디션이 괜찮아져서 잘 돌아다녔다. 딱 10년 만에 돌아온 영국인데, 아파도 귀국 후에 쓰러질지언정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순 없었다. 컨디션이 괜찮아졌다기보단,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첫날 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를 도착했는데 웬걸, 예약 사이트에서 본 사진과는 완전히 딴 판인 곳이었다. 부모님 돈으로 여행하는 가난한 대학생들이라 좋은 숙소는 애초에 생각도 못했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한인 민박을 잡은 건데, 좁디좁은 방에 이층 침대 3개를 욱여넣은 닭장 같은 숙소였다. 심지어 다른 층에 있는 다른 여자 방 사람들과 함께 써야 하는 공용 화장실은 한 개뿐. 변기도 한 개, 샤워부스도 한 개, 세면대도 한 개. 정상적인 상태일 때도 이 정도 열약한 조건은 힘든데,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먼 타국을 온 환자였다. 도저히 열과 오한으로 싸울 그날의 새벽을 이곳에서 보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낡고 좁아터진 숙소도 공금, 새롭게 잡아야 할 숙소도 물론 공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아무리 환자 핸디캡이 있어도 제 멋대로 숙소를 바꿀 수는 없었다. 심지어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찾아본 괜찮아 보이는 단독 숙소들은 모두 런던의 비싼 물가에 맞춰 너무 비싸기만 했다. 슬쩍 새 숙소를 찾는 게 어떠냐고 운을 띄웠다. 나 이 몸으로 여기서는 일박도 못할 것 같아, 진짜 미안한데 우리 다른 곳 알아보면 안 될까? 이미 며칠 전부터 고생한 내 상황을 본 친구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재빠르게 숙소를 알아봤다. 꽤 부촌 같은 동네에 있는 하얀 주택으로 들어가니 더블 침대와 싱글 침대가 하나씩 있는 작은 원룸이 나왔다. 작지만 쾌적한 단독 방에, 우리 셋만 쓸 수 있는 깔끔한 화장실까지! 이제야 마음이 탁 놓였다. 오늘 밤 두 발 뻗고 푹 쉴 수 있겠구나.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환자랑 여행 다니는 것도 꽤나 신경 쓰였을 텐데 기껏 잡아놓은 숙소까지 날리고 추가 비용을 지불해서 잠자리를 옮겨준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모든 게 비싼 유럽여행을 하면서 한 푼 두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줬음에 타국에서의 묘한 전우애 비슷한 것이 솟아났다. 나 빼고 다 길치라고 답답해하지 말아야지. 까짓 껏 그거 동선 짜고 길 찾는 거 내가 다 할 수 있지. 이 몸 하나 불살라서 좋은 곳들 데려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