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는 어디로 흘러가나
퇴근하고 엄마랑 장을 보러 갔다. 집 앞을 벗어나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옆동네, 옛날에 잠깐 살던 동네로 가서 장을 봤다. 퇴근길로 도로가 더 꽉 막혀버리기 전에 얼른 미로 같은 대형 상가에서 필요한 것만 쏙쏙 뽑아 돌아가는 길, 20살의 여름에 원하는 대학을 위해 한번 더 도전해보겠다며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지고 다녔던 반수 학원을 지났다. "엄마, 나는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가끔 여기를 지나게 되면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그때 진짜 열심히 살았지.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해서 지금 내가 그 보상을 누리고 있는 거지-하면서 으쓱했어. 근데, 졸업하고 나서 일 시작하니까 여기를 지나면 마음이 편치 않아." 이젠 마음이 쿡쿡 찔려서 별로 보고 싶지도, 그때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노력했던 과거의 나에게 그로부터 몇 년 후 너의 현재 위치는 여기라고 하는 게 너무 미안해서. 자료조사부터 피피티까지 열심히 하드 캐리 해서 다 만들어놓은 조원 앞에서 발표 하나 맡아놓고서는 그조차 제대로 못해 팀플 성적이 다 같이 깎였을 때 그 죄책감 같달까. 20살의 나는,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을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했던 바를 이룬 21살의 나는, 고생 끝 행복 시작, 앞으로 꽃길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고 거만한 생각이었다. 한 번의 성공은 그 후의 성공을 당연히 보장해주는 게 아니었다. 인생의 첫 업적이 마지막 업적이 되지 않으려면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걸 모르고 나는 누구보다 낭만적인, 낭만적이기만 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 동안 나는 여전히 오지선다형에서 정답을 고르는 세상에 갇혀있었다.
안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가끔은 요리도 해보고, 삼시 세 끼를 건강하게 야무지게 잘 먹고 다닌다. 보고 싶은 드라마도 이젠 맘껏 챙겨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사 와서 읽기도 하고, 운동도 틈틈이 하고 동네 산책도 종종 다니며 이사 온 동네 구석구석을 탐방 중이다. 아직까진 금요일이면 신나서 집에서 나와 뭐라도 하고 싶은 햇병아리 직장인이라 불금마다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친다.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그런가, 학창 시절 끼고 살던 과민성 대장증후군도 많이 나아졌다. 늘 쉬어도 죄책감을 가지며 시계를 보며 정해놓고 쉬는 게 지긋지긋했는데 이제는 퇴근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자기 전 누웠을 때 걱정거리가 없는 게 행복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큰 자극 없는 그야말로 무해한 나날들이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가 아닐까 할 정도로.
누구에겐 절실할 이 삶의 속도가 나에겐 찜찜하기만 하다. 자극을 쫓는 건 인간의 본능일까? 인생이 너무 휘몰아치고 고달플 땐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같은 일상을 꿈꾸지만, 막상 그런 조건이 다 주어지면 얼마 안 돼서 지루함에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는 게 인간의 내재된 변덕일까? 하루하루 치여 사는 삶에 나는 뒷전이 되고, 이 짓은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겨우 탈출해서 찾은 평화는 권태로움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 오늘이라고 온갖 감화를 주는 구절들이 나를 덮친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꿈이 없어요, 하는 우리나라 고3들의 표본이었던 나는 몇 년이 지나 여전히 스스로를 제일 모르겠는 20대 중반이다. 물음표만 가득한 나의 20대는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