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보는 나

사람들은 나를 유심히 보지 않는다

by 재연

어렸을 적 나는, 부끄러움을 아주 많이 타는 소심한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학예회를 하는 날, 부모님들은 자기 아이를 찾느라, 예쁘게 카메라로 담아내느라 정신없었다. 그렇게 관객들은 각자 자기만의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모두가 날 보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쑥스러워서 온몸을 베베 꼬았다. 화질은 안 좋지만 아직까지도 용케 남아있는 그때 영상들을 보면 다른 아이들은 앞에서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열심히 따라 하는데, 혼자 뽈쭘한 웃음을 지으며 혀를 괜히 쭈욱 뺐다가 넣고 동작을 따라 하는 듯 마는 듯 몸을 베베 꼬고 있는 아이가 하나 보인다. 나다. 지금도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너는 무슨 쓸데없는 주인공병에 걸렸냐며 엄마 말곤 아무도 너 안 보는데 혼자 엄청 의식하다고 핀잔을 준다. 유치원에서의 일화를 하나 더 풀자면, 다 같이 전문가에게 그림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주제를 주면 아이들이 그에 맞게 각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전문 선생님께서 부모님과 아이에게 아이의 심리가 어떤지 분석해주시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선생님께서 내 그림을 보시고는 나는 연예인형이라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센 아이라고 분석해주셨다. 무대에 서기만 하면 몸을 꼬고, 말을 하려고 하면 하얗게 질려버리는 나인데,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어 한다고? 어쩌면 뭣도 모르고 그냥 앞에 있는 선생님이 시키니 동작을 따라 하고, 엄마가 잘한다 잘한다 보고 있으니 신이 나 춤을 추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주목받는 걸 의식하고 또 묘하게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어린 나이에도 많은 사람들 앞에 있다는 걸 철저히 의식해서 나온 행동일지도.



어느 정도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되는 나이가 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내 그림으로 내린 심리 진단은 꽤 정확했던 것 같다. 과시욕은 없지만 숨은 강자이고 싶고, 사람들에게 은은하게 그 아우라를 뿜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내 입으로 자랑하진 않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으면 하는 수동적 과시욕이랄까? 모임을 주도하고 싶지는 않지만, 잔잔하게 주인공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자연스럽게 시선과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 그 지점에 서 있고 싶다. 어떤 집단을 가도 모든 면에서 1등을 하고 싶어 했다. 하위권이 된다는 건 견딜 수 없이 괴로운 일이었다. 이런 성격은 나를 늘 좀 더 높은 곳으로, 먼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어딜 가도 "쟤 잘해" 소리를 들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축에 속했다. 그렇게 인정을 받으면 나는 더 탄력을 받아 더 잘 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성격은 자꾸 나를 껍데기와 진짜 나로 분리시키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잘하기 위해선 그만한 노력을 해야 했고, 잘하는 걸 유지하기 위해선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결코 머리가 좋은 게 아닌데, 순전히 엉덩이 힘으로 이겨내는 건데 "그냥 원래 잘하는 애"의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건 내색하지 않아야 했다. 원래부터 활발하고 사교적인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스스로를 발견한 적도 많다. 기분이 안 좋은데 남의 기분을 띄우려고 애쓰고, 궁금하지 않은데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말을 걸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모습들은 모두 내가 아니었다. 물론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때론 나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짜 놓은 '나'에 퍼즐처럼 쏙 맞춰지기 위함이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쟤 잘하는 줄 알았는데, 별 거 없네?"라는 평가가 두려웠다. 내 인생에 결코 중요하지 않은 인물의 대사일지라도 그런 평가를 받는 건 끔찍이 기피했다. 스스로 별 것 없다고 생각이 들었을 땐 더더욱 그 사실을 숨기기 바빴다. 나를 되돌아보고, 그 별 것 없는 것 같은 빈 공간에 무언가를 채워 넣었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포장지로 꽁꽁 싸매서 숨길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럴수록 나는 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어갔고 자존심만 센 사람이 되어갔다. 애써 싸매 놓은 포장지를 누군가 바늘로 톡 건드리면 빈 공기로 가득 찬 내부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누군가 나를 건드리면 풀썩 주저앉았다. 더 높은 곳을 가지 못하면 나는 불행해지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줄 만큼 잘하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인정이라는 것은, 나의 행복을 더 높이는 양념 역할을 할 땐 좋았지만, 주재료가 될 땐 고통스러웠다. '나'는 없고 '남이 보는 나'만 남은 아이러니였다.



내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나는 남이 보는 나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 몰아세우고 있었다. 유치원 학예회 때 관객으로 온 부모님들이 저마다 자기 아이가 얼마나 잘하나 보기 바쁘듯, 내가 잘한 들 못한들 그 결과에 대해 진심을 다해 신경 쓸 사람은 결국 나뿐이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그걸 받아들이고 나 또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참 어려웠고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앞으로의 가치판단에서는 내가 중심에 서있기를 바란다. "남들 보기에 좀 그렇지 않나?"가 아니라 "나는 진짜로 괜찮은가?"가 더 중요하길 바란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판단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