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라는 넷플릭스 영화를 봤다. 임시완 배우와 천우희 배우의 연기는 영화 내용이나 연출과는 별개로 정말 좋았다. 원래부터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인 걸 알고 봤지만, 캐릭터가 꼭 맞춤복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렸다. (물론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평이 천차만별이니 나의 감상을 절대적이라고 강요하진 않겠다.)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혹은 보고나서 만약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면 어떻게 표현해냈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은 늘, 나라면 미처 생각지도 못했을 디테일들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다시 한번 감탄하는 것으로 끝난다.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한 감상도 역시는 역시다로 마무리 됐다. 영화 속 인물은 홍보차 나왔을 유퀴즈에서 본 임시완 배우의 티없이 맑은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악랄한 캐릭터였다. 어떻게 선하고 예쁜 얼굴에서 저런 쎄함이 나올 수 있나. 삶의 대척점에 있는 것만 같은 두 인물을 한 사람이 이 정도로 묘사할 수 있나. 영화 <변호인>을 보고나서도 임시완 배우와 고 김영애 배우의 접견 장면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다. 계속 아이돌 가수만 했다면 이 재능이 묻혀버렸을테니, 어떤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택을 도운 이들이 있다면 잘했다며 일일이 악수해주고 싶을 정도다. (너 뭐 돼..?)
내가 절대 될 수 없는 인간으로 아주 잠깐이라도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죽을 때까지 나로만 살아야하는 당연하면서도 섬뜩한 운명을 모두가 갖고 태어난다. 육신은 뜯어 고칠 수 있어도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집합체인 한 인간에 평생을 얽매여 살아야한다. 그게 마치 저주 받은 일같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자기를 사랑하며, 인간은 언제든 본인이 마음 먹기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기도 하니까. 하지만 정말로 절대 될 수 없는, 절대 되어서는 안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다면? 내가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영역까지 바꿔 아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 호기심 때문에 배우라는 일을, 연기라는 행위를 늘 동경해왔다. 하루에 라면 한봉지로 한끼는 면만, 한끼는 국물만, 나머지 한끼는 일부로 남은 면을 퉁퉁 불려 포만감 있는 저녁식사로 마무리 할 정도로 가난했던 배우가 '본투비' 금수저로 태어난 재벌집 아들을 연기한다. 부족함 없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금슬 좋은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는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배우가, 알코올중독 아빠는 매일 밤 집을 뒤집어놓고 엄마는 집을 나가 어렸을 때부터 두 살 어린 동생의 엄마 역할을 해야만 했던 소녀 가장을 연기한다. 선배 배우들에게 싹싹하고 팬들에겐 잘하기로 유명한 바른 생활 청년 배우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 연기를 한다. 모두 각자의 환경에선 절대 될 수 없었던 역할을 해낸다.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살아보는 것, 나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해야한다는 상상을 하면 묘한 희열감이 느껴진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마음껏 넘어보라고 허락받은 기분. 나로만 사느라 알지 못했던 걸 알게 되고 때론 내가 선망했던 사람으로 살아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미지의 삶을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온양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겉만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감정선을 체화해서 그였다면 이때 이런 기분으로 이런 표정을 짓겠다,가 가능하기까진 아마 혼자 무수히 많은 시간들을 외롭게 견뎌내야했을 것이다. 너덜너덜해진 대본은 그 배우가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수없이 보고 또 보고 연구했을 노력을 방증한다.
면접에 가면 나는 당신들이 놓치면 안되는 인재인 것처럼, 술자리에선 잔뜩 취했지만 엄마 앞에선 꼿꼿이 한 발 한 발 고고한 학처럼 걷는 것처럼, 너와의 대화가 불편하고 혼자 있고 싶지만 갖은 의성어를 섞어가며 너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실생활 연기의 전부다. 연기라는 말도 거창하고 '척'에 더 가깝겠다. 그래도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당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떨까. 당신은 어떤 과거가 있어서 그런 표정과 눈빛을 갖고 있는걸까. 당신은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