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건너온 당근케이크

by 재연


"오빠 나 먹어보고 싶은게 생겼어! 안동에 있는 카페에서 만드는 당근케이크라는데 통밀로 만들었대!"


최근에 알게 되면서 덕질 비슷하게 하고 있는 한 유튜버분이 맛있다고 했는데 건강한 통밀 당근케이크란다. 유튜브를 보다 말고 곧장 찾아봤지만 판매하는 곳이 안동이라 바로 포기하려다가, 택배도 하고 계시다는 말에 다시 배가 요동을 쳤다. 흙당근과 통밀로 구워만드는 건강한 케이크인데다가, 먹기 직전에 따뜻하게 뎁혀 위에 올라간 크림을 살짝 녹게 한 뒤 구운 호두를 부어 따뜻하게 먹는 당근케이크라니. 후기글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이미 한입씩 음미하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오전 9시부터 당근케이크니 안동에서 먹을 수 있느니 소리를 하고 있는 내가 조금 황당도 했을텐데, 오빠는 일하다 말고 전화로 가게에 택배 문의를 하고, 카톡을 보니 "주문완료! 맛있게 먹어!"라고 와있었다. 안동에서부터 날라오는 케이크라니 최근 받은 선물 중 가장 설렌다.




꽤 오래 전이라 기억도 안나는 누군가를 따라하다보니 차를 마시는 걸 즐기게 되었다. 아마 처음에는 예쁜 도자기 잔에 고른 찻잎 혹은 티백은 넣고 보글보글 끓인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리다 마시는 누군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너무 멋지고 어른 같아서 따라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다 점심을 거하게 먹고 카페로 향한 날에는 디저트는 포기할 수 없으니 음료라도 살 찌지 않고 부담도 덜한 차 종류로 고르다보니 어느새 나는 차를 꽤 자주 마시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너무 과일맛이 쨍하고 시큼해서 미간이 찌푸려지는 차도 있고, 과도하게 은은해서 다 마실 때까지도 이게 대체 무슨 맛인고..하는 차도 있다. 어쩌다 우려낸 시간과 물 양, 찻잎의 향긋함 세박자가 딱 맞아떨어질 땐 몸 구석구석의 근육이 쭉 이완되면서 속이 뜨끈해지는게 꼭 해장국 같기도 하고 너무 뜨거워서 발부터 우선 담갔다가 조심 조심 목까지 들어간 탕에서 이내 몸이 딱 좋아하는 온도로 맞춰져 마치 물이 나를 감싸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같기도 하다. 여름에는 도무지 뜨겁게 먹을 수 없어 아이스로 주로 마시지만, 확실히 무언가를 우려 마시는 음료는 뜨거울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물에 물감을 푼 것처럼 색이 곱게 퍼지면서 3-4분, 물을 좀 많이 넣었다 싶으면 5분 정도, 기다려주면 딱 알맞은 농도가 된다. 누군가를 따라하다보니 어느새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를 하고, 주전자에 물을 올려둔 뒤 티백을 고르는 게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마음에 드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서슴지 않고 따라하는 편이다. 맛있다는 걸 따라 해먹어보고, 그 사람의 취향이 가득 담긴 집을 구석구석 살피며 나중에 내 공간이 생기면 나도 저렇게 꾸며봐야지, 한다. 따라한다는 말의 어감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만, 수많은 사람 중 유독 그 사람이 내 눈에 띄었고, 무언가 나한테 강렬한 인상을 주어 닮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결국 내가 추구하는 모습의 한 단면과 그 사람이 보여주는 한 단면이 얼추 비슷하기 때문일테니 개의치 않는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요조님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책에서도 앞으로도 타인들을 유심히 응시하면서 따라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할 때마다 신나게 따라할 생각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도 따라해봐야지. 타인을 관찰하면서 식성, 습관, 루틴과 같은 작은 부분들을 잘 따라 빚어 나에게 얹어보는 일, 그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기대하는 일.




케이크가 올 때까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린이의 심정으로 기다렸다. 오전 일과를 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우체국 택배 카톡이다!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는 알림 문자였다. 점심도 일부로 평소보다 덜 먹고 도착 알림만 기다린 나는 드디어 저 멀리 안동에서부터 우리 집 앞 현관앞까지 와준 당근 케이크를 신속하게, 그렇지만 소중히 들고 들어와 개봉식을 했다. 상자를 열자마자 향긋한 시나몬향이 훅 났다. 시나몬 가루로 덮여있는 둥근 케이크, 별다른 장식없이 투박하고 수수했다. 기교나 잔재주 없이 정공법으로 승부보는 장인같은 자태였달까. 여섯 조각으로 조심히 잘라주고 한 조각은 그릇에 살포시 담아 설명서대로 15초 정도 전자레인지에 넣어 뎁혔다. 녹은 빙벽같은 크림 지붕 위로 구운 호두 분태를 살살 부어주니 카페에서 파는 모양 그대로다. 케이크 속 온기가 식기 전 재빠르게 사진을 몇장 찍어주고 본격적으로 먹어본다. 폭신한 빵과 투명하게 녹은 크림 그리고 고소하게 볶은 호두까지 삼합으로 어느 하나 떨어트리지 않고 입으로! 입에 넣자마자 촉촉하게 젖은 흙에서 바로 뽑은 신선한 당근맛..까진 아니고 엄마가 집에서 구워주는 것같이 소박한 맛이었다. 나무 그릇에 소담하게 담아 이불 속에서 야금 야금 먹어야 할 것만 같은 어딘가 시골스러운 정이 있는 맛.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 마음을 대신하고 싶은 그런 맛이었다. 배송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마음을 하나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한 조각을 따라해보는 건 앞으로도 신나게 해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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