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일기
누군가 결혼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결혼식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나 맺은 소중한 인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아주 귀한 자리이며, 그런 자리는 장례식 전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아무렴, 애석하게도 나는 내 장례식에 영정사진으로밖에 참석하지 못하니 살아있는 동안 이렇게 모든 사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건 결혼식이 유일무이하겠다. 두발 규정으로 칼각 단발머리였던 중학교 때 친구부터 야간자율학습실에서 동고동락한 고등학교 친구들. 누구 한 명이라도 애인과 헤어지면 그건 우리 모두가 나눠야 할 슬픔이라는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술집으로 모여 밤새 술잔을 부딪혔던 대학교 친구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같은 회사 같은 부서라는 이유로 가족보다도 서로를 더 많이 보게 된 직장 동료들. 살면서 만난 모든 이들이 한날한시에 오로지 나의 새 출발을 축하해 주러 온다는 사실은 떠올릴 때마다 닭살이 돋을 정도로 새삼스러웠다.
“신부님, 문이 열리면 들어가셔서 가장 먼저 인사하시고 오른쪽에 있는 아버님 손 잡고 천천히 걸어주세요.”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예식장 문밖에 서 있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렸다. 그 순간이 가장 가슴이 터질 듯이 긴장될 것 같아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거였다.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터지면 어떡하지? 긴장해서 목소리가 떨리면 어떡하지, 긴장하면 손도 떨려서 마이크까지 흔들릴 텐데 하객들에게 다 보이지 않을까? 오만가지 걱정을 했지만 시간은 뭐 어쩌겠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쌩하고 지나갔고 마침내 대망의 당일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몇 번이고 상상 속으로 그렸던 그 장면에 내가 서있었다. 닫힌 예식장 문 앞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나. 식장 안에서는 내가 고른 입장곡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타이밍에 맞춰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렸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다. 내 결혼식이지만 정말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두운 돔 천장에는 하얀 꽃잎이 떨어지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고, 양쪽으로는 하객들이 정말 빼곡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긴 복도 끝에는 이제는 전남자친구이자 현남편이 될 사람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분명 이 장면을 삶의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기억할 것 같다. 살면서 다닌 여행 속 어떤 풍경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적은 없었다.
사실 1년 남짓한 결혼 준비 기간 동안 ‘이놈의 결혼식, 진짜 꼭 해야 해?’할 정도로 해야 할 일은 많았고, 써야 할 돈은 더 많았다. 아낄 땐 아끼고 중요한 것에만 쓰는 알뜰살뜰하고 현명한 예비 신부가 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모든 과정마다 욕심이 고개를 빼꼼 들었고, 신부라면 모두 걸리는 ‘보태 보태 병’, ‘10만 원 차이인데 병’에 나도 걸려버리고 말았다. 이 병의 존재는 결혼 준비가 막바지에 접어들면 비로소 깨닫게 되는데, 어차피 그때 정신이 번쩍 깨 봤자 이미 로망이란 로망은 아주 꽉꽉 채운 신부가 되어있다. 모두가 그런 것이니 너무 땅을 치지 마시길.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우니 더더욱 후회하지 마시길. 문이 열리기 직전까지 쿵쾅쿵쾅 심장이 뛰었던 긴장은 물에 적신 솜처럼 그렇게 한 순간에 씻겨나갔다. 대신 눈앞의 장면을 어떻게든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눈으로 열심히 담았다. 축하해 주러 온 하객들을, 처음 잡아보는 손 모양으로 내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는 우리 아빠를, 원래도 작은 눈이 더 안 보일 정도로 눈이 휘어지게 웃고 있는 남자친구를.
이렇게 재밌는 결혼식이라면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나의 다소 위험한 발언과 함께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다. 끝나고 가장 많이 들은 건 내가 엄마와 아주 판박이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엄마의 오랜 친구분은 내가 등장할 때 순간 엄마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평소에 모녀가 참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서로 장난식으로 입을 삐쭉 내밀며 기분 나쁜 척했지만 그날은 왜인지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엄마도 결혼할 때 나처럼 ‘내가 결혼이라니!’ 했겠지? 엄마도 결혼을 하고 가족의 품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는 이 문턱에서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했겠지?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을 엿본 것 같았다. 엄마는 주먹만 한 크기의 비즈가 달린 촌스러운 드레스에, 아빠마저 눈 마주칠 때마다 무서웠다고 하는 진한 화장을 하고 그때 그 시절 특유의 감성이 물씬 나는 결혼식을 올렸었다. 그때 그 사진을 가끔 꺼내보면 그냥 늘 내가 보는 엄마 같았는데 이제는 그 사진에서 묘하게 앳된 얼굴이 보인다. 우린 엄마는 왜 늘 엄마였을 거라는 황당한 착각을 하고 살까. 엄마도 한 때 나처럼 낙엽만 굴러가도 자지러지게 웃는 여고생(어른들이 하는 이 표현이 무슨 말인지 이젠 확실히 알겠다.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겠지.)이었고, 성인이라고 서툰 화장을 열심히도 얼굴 위에 그렸을 것이고, 아빠를 만나 처음으로 ‘이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겠다’ 하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착각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자취해 본 적이 없어 지금까지 한평생 가족과 함께 살았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꽤 자주 다닌 편인데, 사는 곳도, 동네도 매번 달라졌지만 언니 방 하나, 내 방 하나, 그리고 안방 하나가 있는 집의 모양은 늘 똑같았다. 공간만 바뀔 뿐 그 안에 복작복작 엉덩이를 서로 부대끼며 사는 구성원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서 내가 똑 떨어져 나왔다. 퍼즐에서 하나가 똑 떨어지듯이, 홀케이크에서 한 조각이 쏙 빠지듯이. 아침에 눈을 떠 거실로 나가면 가족들도 하나둘씩 눈을 비비며 나와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래서 가족은 한평생 같이 사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인생의 절반도 안 되는 인생 1막만 함께 하는 것이고, 그 1막은 이제 막 끝난 것이었다. 2막은 새로운 가족이 된,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먹성 좋은 남자와 함께 보내야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과는 1막보다도 더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부모님과는 고작 30년을 살았고, 이제 남편과는 40년 이상을 살게 되겠지. 새엄마, 아빠와의 시간은 당연하지도 않고, 긴 것도 아니었구나. 왜 이런 진부한 깨달음은 꼭 닥쳐서야 올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퇴근을 하고 녹초가 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늘 ‘‘어 왔어? 얼른 손 씻고 밥 먹자”하며 반찬을 나르고 있었다. 이제는 그 풍경을 매일같이 볼 수 없다.
아직은 본가가 내 집 같아, 신혼집은 아직 낯설어, 하다가 어느 날엔 본가집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하는데 잠시 멈칫했다. 뭐였더라? “너 이제 헷갈리는구나?” 엄마가 피식 웃으며 번호를 탁탁탁 누르고 대신 문을 열었다. 뒤따라 들어가며 이걸 어떻게 헷갈리냐며 머쓱한 마음에 괜히 큰소리쳤지만 마음이 이상했다. 타고난 먹보라 같이 장을 보러 가지 않아도 냉장고 구석구석을 다 꿰고 있는 편인데, 어느 날엔 냉장고 문을 여니 언제 어디에서 샀는지 모르는 것들이 잔뜩이었을 때도 마음이 이상했다.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미주알고주알에 느려지고, 점점 내 자리가 지워지고 있는 것 같아 묘하게 서운함까지 들었다.
가족들이 처음 신혼집을 구경하러 놀러 온 날, 네 명이 모여 있으니 또 그냥 우리는 그대로인데 집만 새로워진 기분이었다. 그러다 얘도 쉬어야 하니 이제 슬슬 가자며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서는 길을 배웅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꾹 참았다가 혼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신혼집에 인질로 잡혀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서럽게 울어도 되나 싶어서 우는 와중에 혼자 웃기기도 했지만. 가족들을 배웅하는 상황이 아직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이젠 정말 따로 사는 거야! 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결혼이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자, 지난 삶과 잘 이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삶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별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고 싶진 않지만, 지나간 것을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으면 새로운 걸 쥘 수 없으니 ‘좋은 이별’이라고 표현하겠다. 언제까지고 부모님의 안락한 그늘 밑에 드러누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찬가지로 가족들도 결혼해서 독립한 퍼즐 한 조각, 케이크 한 조각과 천천히 이별하고 있다. 이제 방이 하나 남아 다 각방을 쓸 수 있어 아주 쾌적하다며 웃다가도 옆에서 쫑알거리는 애가 없어져서 집이 조용해질 것 같다고 은근히 아쉬워한다. “엄마, 나 오늘 엄마네 집 가서 자고 갈까?”하면 “남편 두고 뭘 여길 와.. 그럴래?”한다.
우린 아마 앞으로도 계속 서로에게 미련이 뚝뚝 넘치는 아주 지독한 전 애인 같은 관계를 유지할 것 같다. “왜 이렇게 자주 연락해” 귀찮아하다가도 연락이 안 오면 무슨 일 있나, 지금 뭐 하나 궁금한 그런 요상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