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퇴사 후의 일상

by 재연

언제 이렇게 단풍이 들었지? 우리 집 거실 창은 산과 나무로 빼곡해, 계절에 따른 미세한 풍경의 변화를 챙겨 보기 좋은 명당이다. 분명 매일같이 빼먹지 않고 봤는데도 간밤에 옷을 후다닥 바꿔 입은 건지, 올해는 유난히 성큼 단풍이 든 기분이다. 벌써 듬성듬성 머리카락 빠진 나무들도 있는 걸 보니 아마 이 모습도 길어야 1-2주 정도만 만날 수 있겠다.


전날 촘촘한 바깥 스케줄로 바빴던 남편이 내심 집에 혼자 있는 내가 맘에 걸렸는지, 오후쯤 명수당이라는 곳이 단풍 명소라면서 "내일 갈까?" 카톡을 보내왔다. 안 그래도 요 근래 발 빠른 SNS계정들이 단풍 명소라며 올린 곳 중 하나였다. "주차하는 것만 해도 한 세월이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한번 가보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내려 보온병에 담고 전날 구운 파운드케이크도 용기에 담아 차에 올랐다.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도 틀어주고. 명수당은 대학 캠퍼스 안에 있어 학교 정문을 통과해 들어가야 하는데, 주말이라서 그런지 노란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교문에는 학생보다 나들이 온 소풍객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인터넷에서 본 경고글보다는 더 수월하게 주차를 마치고 파운드케이크를 입에 넣고 따뜻한 커피로 촉촉하게 적셔 먹으면서 나가기 전 잠시 배를 따땃하게 데운 뒤 나갔다. 작은 호수와 높다란 나무가 있는 명수당에는 큰 카메라를 든 할아버지부터 정석의 가을룩으로 맞춰 입은 커플, 자기 몸보다 큰 패딩, 그러니까 언뜻 보면 패딩이 사람을 입은듯한 아가까지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좋다 여기, 여기 학생들한텐 이 길이 고백의 길 뭐 이런 거일리나?" 학교마다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그런 길이 있지 않냐며. 경사진 메타세쿼이아길을 오르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마치 액자처럼, 그 사이에 그림처럼 담긴 풍경을 쪼그려 앉아 찍는데 뒤에 오는 아주머니들도 함께 멈춰 서서 여기 사이로 보이는 게 이쁘네, 하셨다. 모두가 좌우 대칭의 멋진 메타세쿼이아길의 정중앙을 바라볼 때 내 카메라를 따라온 시선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그런 것들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었다. 지나치기 쉽고 작은 것. 일상에서도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엄밀히 말하자면 일희일비하는 성격이 눈앞에 보이는 것에도 반영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산책을 할 때면 매일 걷는 길이어도 재밌는 것들 투성이었고, 비슷한 일상에도 이야기할 거리와 글로 기록해 두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었다. 사진을 배우던 시절 '재연님만의 시선이 전 참 좋아요'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선생님의 애제자였고, 블로그에 가끔씩 썼던 글에는 '딱 콕 집어 말하긴 어려운데 재연이 글은 따뜻해'라는 댓글이 종종 달렸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최근 몇 달간, 아니 생각해 보면 올해에 들어와서는 그런 성정도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사라진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글을 쓰고 싶어 키보드를 매만져봐도, 뭐라도 찍고 싶어 카메라를 챙겨 나가도 빈 페이지는 도무지 채워지질 않았고 카메라는 가방 안에서 바깥 구경 한 번 못 해 본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첫 문장의 첫 글자조차 내딛기 힘들어하는 스스로가 견디기 어려워 영혼이 메말랐나- 사람이 건조해졌다- 하며 노트북을 덮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회사에서 맨날 쓰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지- 하며 자기 위로를 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사라졌다는 감각은 외면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게 더 이상 좋지 않을 때, 그걸 자각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상실감.


더군다나 주위 사람을 챙기는 것조차 점점 소홀해졌다. 연락은 귀찮아졌고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은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매일의 일상을 함께 하는 남편은 끝도 없이 배출되는 내 감정을 한동안 받아내야 했다. 내 감정은 쏟아내는데 정작 남의 이야기에는 무신경해졌다. 칼에 조금만 베여도 아파 어쩔 줄 몰라하면서 남의 상처에는 둔감해진 나였다. 이렇게 변하고도 조금 시간 지난 후에야 깨달았고 그제야 허둥지둥 내 손으로 바로 잡았다.


퇴사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더 많은 무게를 지고도 버티고 해내니까. 아직 커리어라는 것이 단단한 도자기가 되기 전,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모양을 잡고 있는 단계인 지금 퇴사하는 건 실수이고 후회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물기를 너무 많이 머금은 흙이라면 물레가 돌아갈 때 그 위에서 중심도 못 잡고 휘청거리다가, 도자기는커녕 어느 순간 철퍼덕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일일이 적기도 힘들 정도로 명대사가 많은 드라마이지만, 방영할 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찌르르해지는 대사가 있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아파트는 평당 300kg의 하중으로 설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학교나 강당은 하중을 훨씬 높게 설계하고...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그러니까 지금은, 내력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있을 수많은 변화에는 또다시 흐트러지지 않도록 내력을 단단히 세우는 것. 근사한 도자기로 구워지기 전 흙부터 다져놓는 단계. 여전히 틈이라도 생기면 불안함이 때를 놓치지 않고 솟구쳐 오르지만 동시에 조용한 확신이 든다. 이 시간은 나를 더 멀리,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줄 거라고.


단풍이 모두 낙엽이 되어 거친 나뭇가지만 남는 겨울이 되면 매일 보는 거실 창밖이 휑하고 조금 우울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너무 갑작스럽게 물든 가을 풍경에 벌써부터 괜히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겨울은 겨울대로 또 다른 매력이 있겠지, 게다가 나무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엔 정말 장관이겠다,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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