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는, 아주 오랜만에 찾은 좋아하는 일이었다. 쓰고 싶은 글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때,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황급히 써 내려갈 때면 작가에게 오는 '영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 짜릿함도 든다.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의 속도를 키보드 두들기는 속도가 열심히 따라와 줄 때, 어떤 단어가 더 알맞을까 잠깐 멈췄다가도 다시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빚듯이 문장을 다듬어 줄 때. 그 시간은 언제 어디에 있든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땐 한 곡을 무사히 연주하고 난 피아니스트처럼 뿌듯했다. 빈 창을 켰을 때만 해도 어지러웠던 마음은 체에 걸러 내린 고운 가루처럼 차분해졌다. 글 쓸 때만 누릴 수 있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각이 좋아 글이 좋아졌고, 더 잘 쓰고 싶어졌다. 아주 오랜만에, 잘하고 싶고 어쩌면 좀 잘하는 것 같기도 한 기분 좋은 착각도 드는 일을 찾은 것 같았다.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말하면 말할 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글 쓰는 게 취미예요."
그런데 요즘 부쩍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글감도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쓰고 나서도 어딘가 개운한 맛이 없다.
글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 순간 든 첫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어떻게 찾은 흥미였는데. 겨우 찾은 좋아하는 일을 다시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좋아하는 것이 더 이상 좋지 않을 때, 내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변한 것처럼 느껴져 내가 아주 낯설어진다. 딸이 좋아라 하는 김치찌개를 어김없이 끓여간 날 "엄마, 나 사실 김치찌개 안 좋아해. 좋아한 척한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같다. 딸도, 자녀도 없지만 꼭 그런 마음일 것 같다.
허탈감이라고 해야 할까, 상실감이라고 해야 할까, 배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중첩된 어딘가에 있는 마음에 괴로워하며 이렇게 된 이유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왜 갑자기 미적지근해진 걸까. 스스로를 농담 반으로 '먹고 글 싸는 글싸개'라 칭하며 태웠던 열정은 어디 간 걸까. 열정을 태워 재가 된 걸까. 이 열정만큼은 뭉근하고 오래가는 장작불인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임은 분명했지만 나도 모르게 은근히 기대했던 바가 있었다. 내 글, 꽤 괜찮은데 왜 안 봐주지? 왜 관심이 별로 없지? 글쓴이도 독자도 오로지 나일 때, 그렇게 내 글이 덩그러니 남겨지는 날이 반복될 때마다 괴로웠다. 훌륭한 글이라도 결국 누군가에게 읽혀야 의미 있는 거 아닌가? 서점에 있는 모든 책들도 사실 책의 형태로 출판되지 않았다면,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그 책을 집어 들지 않았다면 작가의 책상에 방치된 수많은 글 중 하나, 혹은 일기장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사실은 관심을 갈구하고 있던 방구석 글싸개에게 쓰는 의미나 동기는 자꾸 약해지고 있었다.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남들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흥미를 잃고 마는 것이었다. '그럼 애초에 좋아하는 게 아니지ㅋㅋ 좋아하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지.' 혼자 자조 섞인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남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지속할 수 있고 그 자체로 기쁜 건 과연 있을까?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맛있는 음식 먹기다. 엽떡을 시켜 먹을 땐 그 누구도 내 식사를 궁금해하지 않아도 아무렴 상관이 없다. '와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오늘 엽떡 먹어야겠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행복은 이미 최대치로 발동하고 있다. 살코기와 비계의 환상적인 비율로 이루어진 삼겹살을 치익-취익- 팬에 굽고 야무진 한 쌈을 싸서 입에 넣을 땐 '정말 쌈 잘 싸시네요!'라는 반응을 듣지 못해도 충분히 멋진 식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 먹기란, 30년째 변한 적 없는, 흥미를 잃은 적도 없는 취미라고 할 수 있다.
취미가 꼭 매일 해도 좋아야 할까? 취미에도 권태기가 올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런 합리화를 갖다 붙이다가, 결국 '글 쓰는 것이 취미'라는 말이 나에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남의 관심이 조건부가 되는 것은 순수한 취미라고 보기 어려우니까. 나는 척하거나 그럴듯한 포장, 있어 보이는 말에 필요 이상으로 털이 곤두서는 예민한 사람이라, 스스로 '취미'라는 단어로 포장해 놓고서 아무도 봐주지 않을 때 낙심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너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결과 때문에 흥미가 떨어질 때마다 취미라는 숭고한 영역에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순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내가 이렇게까지 '관심종자'였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정해야겠다. 나는 '글 쓰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 아니라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내가 만족스럽고, 읽는 사람도 내 글을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글. 그런 글에 욕심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웃음이, 또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생각의 전구를 켜 주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거창하게 말해볼까. 화면 너머에 분명한 독자가 있고 그를 감화시켜 주는 글을 쓰고 싶다.
인정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하다. 나는 글이 취미가 아니고 잘하고 싶은 거다. 하면 할수록 자꾸 욕심이 생기는 그런 것이다. 잘하고 싶다. 진짜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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