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 작가님의 신작이 나온다고 한다. 제목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제목만 들어도 이미 소파에 앉아 휴지를 찾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또 얼마나 많은 날을 드라마 속 대사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감탄했다가, 왜 나는 그런 표현을 할 수 없는지 한탄하기를 반복할까. 박해영 작가님의 드라마는 늘 그랬다. 상처 있는 캐릭터들이 담담하게, 때론 감정을 폭발시키며 내뱉는 대사를 소중하게 긁어모아 음미하고 이입하게 만든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인물의 인생을 마치 과거의 나를 보듯이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다. 겪어본 적 없는 인물의 상처가 마음속 깊이, 너무 깊어서 나도 몰랐을 정도로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아픈 기억처럼 새겨진다. 그래서 늘 화면 속 인물과 같이 울 수밖에 없다.
드라마 <또 오해영> 중
"나는 네가 아주 아주 불행했으면 좋겠어. 매일 밤마다 질질 짰으면 좋겠어. 나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으면 좋겠어. 나는 이대로 너를 생각하다가 화병으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으면 좋겠어."
'하루종일 작아서 불편한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면 그 사람 생각을 덜 하게 돼요. 신경이 온통 발에 가 있으니까.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으면 아주 잠시나마 행복해져요.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당신에 대한 기억 때문에. 정말 어이없는 곳에서 당신이 생각나 조용히 무너질 때마다 아파라 아파라 더 아파라. 새벽에 일어나 자꾸 핸드폰을 확인할 때마다, 발길은 앞으로 가는데 마음은 뒤로 가겠다고 울고 있을 때마다 아파라 아파라 더 아파라. 손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사라져요. 열이 펄펄 끓을수록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사라져요. 아플수록 마음은 편해요.'
또 오해영은 2016년에 방영됐던 드라마다. 이제 막 고삐가 풀린 대학교 1학년 때여서 그랬나, 사랑이라는 건 너무 큰 단어여서 그랬나, 그때만 해도 오해영이 하는 대사가 투머치로 느껴졌다. 주인공이 말이 좀 기네, 말이 좀 많네, 파란색 아이섀도는 좀 과하지 않나? 하고 말았다. 내용을 어렴풋이 이해는 했지만 마음으로 이해했다고는 못 하겠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내가 오해영과 겹쳐 보이는 순간들을 만나게 됐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내가 없어도 행복하길 바라, 나를 잊어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위인은 되지 못했다. 아니, 사실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먼저 떠났는데 그 앞길을 축복해 줄 수 있다고? 밤마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애달파했다가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했다가, 나는 이렇게 너 때문에 지킬 앤 하이드가 되어 가는데 영문도 모른 채 자고 있을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해지면 저주는 내가 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남겨진 건 난데 괴로움도 오로지 내 몫이다. 더 좋아했던 사람이 나중엔 승자라는데 잘 모르겠다. 더 좋아했던 사람은 끝까지 더 힘들다. 그가 행복하길 바라는 개뿔, 언젠가 호되게 후회하며 내가 했던, 너는 귓등으로 들었던 말이 하나하나 송곳처럼 되돌아와 박혔으면 좋겠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자책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날 찾아오면 나는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가장 차갑게 널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 서늘함에 네가 한 번 더 무너지면 좋겠어.
주인공이 했던 표정으로 주인공이 했던 대사를 마음속으로 쏟아내는 나를 언젠가 발견했다. 그제야 생각했다. 작가님은 대체 어떤 사랑을 한 걸까. 머리에서 나온 대사였다면 그 상상력을, 경험과 가슴에서 우러나온 대사였다면 그 아픈 경험을 이렇게 승화할 수 있는 능력을 흠모할 수밖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냐.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누가 날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것 같고.”
“좋아?”
“슬퍼.”
“왜?”
“나를 아는 게 슬퍼.”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니. 서로가 서로를 가여워하는 동훈과 지안의 대사가 마음을 찔렀던 드라마다. 엔딩 장면도 이보다 더 좋은 마무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용두용미였다.
크게 잘난 것 없는, 오히려 조금씩 '후진' 면들을 갖고 있는 후계동 사람들이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것도 참 좋았다. 나는 후계동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살 순 없는 걸까 생각도 했다.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다음 파도가 치는 삶에서 그냥 인간만큼은 서로 의지하고 살 순 없는 걸까. 서로 할퀴지 말고, 상처 주지 말고, 서로 보듬어 줄 순 없는 걸까. 후지면 후진대로, 굽었으면 굽은 대로. 기우뚱하게 난 고목이 또 반대 방향으로 기우뚱한 고목과 서로 절묘하게 맞아 서로를 지지대 삼고 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나는 당신을 아주 좋아했었다. 언젠가 당신이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나를 좋아했을까?' 궁금해한다면, 그땐 꼭 이 말을 전해줘. '그 여자는 자기 자신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고. 당신 덕분에.'"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아마도 '추앙하다'라는 말이 사전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입으로 실제로 쓰이게 된 계기였던 드라마이지 않을까. '날 추앙해요'라는 다소 생소하면서 동시에 자극적인 대사는 그 이후의 대사를 들으면 납득이 간다.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사랑으론 안 돼. 명령 같은 대사 그 이면에 미정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결핍, 쓸쓸함이 너무 잘 느껴진다. 어떤 외로움을 견뎌온 걸까.
몇 년 후 다시 재회하는 구 씨와 미정은 비로소 조금은 채워진 얼굴이다.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구겨진 것 하나 없이-라는 대사처럼. 그렇게 원했던 해방과 조금은 가까워진 것처럼. 그리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는 말을 한다.
박해영 작가님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상처를 갖고 있고, 결말로 달려가면서 성장한다. 자신의 결핍과 마주하고 채우게 된다. 어딘가 찌그러지고 휘어진 인간들이라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고,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중간쯤에야 깨닫게 된다. 나의 어떤 면과 닮아서 마음을 줘버리게 됐다는 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에나와 같은 단점을 가진 사람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내 결핍과 닮은 사람에게 마음을 쓰게 된다. 결국 타인을 볼 때 나는 또다시 나를 보게 된다.
검색해 보니 이번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개요가 딱 한 줄로 표현되어 있다.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 미쳐버린 인간의 평화 찾기를 따라가는 작품'. 이번엔 또 어떤 나를 마주하게 될지, 또 어떤 대사에 툭 걸려 넘어져 한참을 쓰러져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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