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by 재연



지난여름부터 심리상담을 다니고 있다. 이 말이 내 입에서 이렇게 서슴없이, 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대개의 경우 심리상담을 다닌다고 하면 걱정 어린 눈빛과 함께 힘든 일 있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상담을 받기 전의 나였어도 아마 비슷한 반응을 했을 거다.


다행히 나는 심각한 정신적 문제 때문에 간 것은 아니고, 친언니의 회사에서 가족에게도 무료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혜택이 있었고 '한 번 나도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집 근처 심리상담 센터를 찾아보고 괜찮은 위치의 마음연구소를 하나 찾았다. 홈페이지를 보면서 가장 인상이 좋아 보이는 선생님, 왠지 내 이야기를 푸근하게 들어주실 것 같은 인상의 선생님을 골라 상담 예약을 했다.


상담 첫날엔 선생님이 나를 꼼꼼히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연속에 답하며 내 30년 인생을 압축적으로 선생님에게 읊었다. "그때 마음이 어땠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같은 질문에 몇 번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그러게요, 어떤 마음이었더라, 음.." 진찰하듯이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선생님께 최대한 꾸밈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긴 그래야만 하는 곳이니까. 서로에게 솔직할수록 좋은 곳. 가끔씩 이런 것도 고민이라고 가져와도 되는지,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며 눈치 보는 나에게 선생님은 언제나 비슷한 답을 주셨다. 재연님이 불편하면 고민이 맞는 거고,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많으며, 난 왜 이러지 하지 말고 본인을 그냥 인정하라고.





며칠 전에도 상담을 다녀왔다. 영하의 날씨에 아무 곳도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상담을 가는 발걸음은 그래도 가벼웠다. '난 네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든 다 들어주고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어' 두 팔 벌려 기다리는 곳이라서 그런가. 가장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서. 늘 그렇듯 넓은 통창이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 선생님이 타 준 따뜻한 차 한 잔을 두 손으로 쥐고 한 주는 또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게 제일 괴로웠는지 묻고 답했다.



....

"저는 왜 그렇게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했었을까요?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조금만 더 멀리 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너무 어리석은 것 같고, 스스로를 보호할 줄을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요. 내가 덜 상처받을 것 같은 선택, 덜 아플 것 같은 선택. 재연님은 그때 본인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된 선택을 한 거예요. 근데 선택의 결과는 모르는 거잖아요, 아무도. 그러니까 그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고, 자꾸 본인한테 생채기 내지 말고. 그냥 '아-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구나. 다음엔 더 좋은 선택을 해야지'하고 말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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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존 본능은 탁월한 수준이다. 교통사고 직전이나 추락의 순간 등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 당시에 대해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사소한 디테일까지 보였다, 같은 말을 한다고 한다. 이는 뇌가 불필요한 정보는 삭제시키고, 생존에 필요한 정보만 인식하기 위해 작동한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까 뇌가 '지금은 살아야 해!'라고 판단하면, 본능적으로 인지 자원을 생존 관련 정보에 몰아주게 된다는 거다. 꼭 우리가 마음을 먹지 않아도 인간의 뇌와 몸은 생존하기 위해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조금 더 실생활의 예시를 들자면, 애인과 헤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별을 고하는 그에게 내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면 그건 내가 미련 맞고 자존심도 없는 구질구질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곁에 더 이상 없는 것이 내가 매달림으로써 겪는 온갖 수모와 상처보다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 모든 걸 감수하고도 처절하게 매달렸던 거다. 매달리고 또 매달리다가 결국 나도 함께 손을 놓아버릴 땐 이젠 내가 그에게서 받는 상처가 더 커진 거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압도하게 된 거고.






그러니까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그때는 멍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도 사실 당시의 나는 필사적으로, 생존 본능으로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지를 골랐던 것이다. 그때의 나를 미워하고 타박하기엔, 걔는 나름의 최선을 다 한 건데. 때론 나를 타자화해서 제삼자처럼 바라봐줄 필요가 있다. 우린 보통 남에게 너그럽고 나에게는 야박하기 때문에. 그땐 그걸 견디기가 힘들었구나, 그래서 그런 결정을 했던 거구나. 무신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온한 선생님의 대답에 머리가 띵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시험 문제를 풀 때도 그랬다. 채점하고 나서 다시 보면 명확한 오답이 보이는데, 문제를 풀 때만 해도 다른 답을 고른 나름의 논리랄까 사고의 흐름은 분명 있었다. OMR에 컴퓨터싸이펜을 칠할 때까지만 해도 철석같이 그게 답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틀렸다고 해서 이론의 개념조차 모르고 시험장에 들어간 바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매 순간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내려주고 있다고 믿자. 먼 훗날 봤을 땐 안타까운 선택일 수도 또 반대로 멋진 선택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말고, 미래의 나를 너무 눈치 보지 말고 그냥 그때그때 현재로서 최선의 선택을 하자. 분명 잠 못 이루며 고민한 끝에 나온 선택일 테니 그게 최선이라고 믿자. 그런 날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싶은 선택도 할 수 있게 되겠지. 그날도 상담방을 나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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