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부터, 그러니까 이제 두 달 정도 영상을 찍고 있다. 원래도 눈은 꼭 16:9 비율로 세상을 보는 뷰파인더 같아서 내가 보는 걸 고스란히 영상으로도 담는 게 생각보다 재밌다. 또 아예 내가 죽을 때까지 스스로 볼 수 없는 각도로 (예컨대 카메라를 나를 향하게 돌려 찍는다든지) 찍는 것도 새롭다. 이런저런 각도로 찍어보는 걸 시도해 보는 중이다.
오늘 아침도 예보대로 눈이 왔다. 해가 점점 뜨면서 햇빛에 반짝이는 눈, 바람이 불 때마다 쌓여있는 눈송이를 조금씩 털어내는 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 사이로 하얀 눈길을 아침부터 걷는 부지런한 노부부. 멍하니 보다가 얼른 폰카메라를 켰고 역시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한 화질과 아름다움에 아쉬워하면서도 녹화 버튼을 꾹 눌렀다.
영상을 찍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든 생각이 있다. 첫 번째는 너무 당연하게도 일상의 장면들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 아 너무 뻔한가, 싶은 말이지만 진짜로 그렇다. 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주로 찍다 보니 요리를 할 때 특히 더 많이 느낀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물 표면이 새삼 예쁘고, 재료는 또 얼마나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갖고 있는지. 재료의 색을 보다 보면, 밖을 나가지 않아도 오만가지 색을 다 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토마토에도 빨간색, 덜 빨간색, 주황색, 초록이 섞인 붉은색.. 컴퓨터 속 색상 팔레트조차 표현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색이 자연에는 있지 않을까. 밖에서 촬영할 땐 소음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귀도 활짝 열린다. 공원에 가만히 정말 가만히 앉아 소리에만 집중해 본 적이 있으신지. 바람 소리를 파도 소리에 비유하는 이유를, 세상의 모든 비유와 문학적 표현이 분명한 근거가 있는 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는 좋은 점.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좋지 않은 점도 물론 있다.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면 기록의 순수한 마음에 조금씩 욕심을 낀다. 한 명이라도 더 봐줬으면, 내 영상을 좋아해 줬으면 하는 욕망이 끓어오른다. 내가 만든 것이 어엿한 콘텐츠라는 이름표를 달기 위해서는, 아니 거창한 이름표도 필요 없으니 그저 보고 싶은 영상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만족에만 머무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유튜브 세상에는 수많은 브이로그가 있으니 그 사이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들이미는 건 여간 쉽지 않다. 남의 것도 열심히 보고, 고민하고 바꿔보고 또다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AI시대 속 살아남는 콘텐츠'와 비슷한 제목의 영상들이 요즘 차고 넘친다. 그도 그럴 것이, AI는 이제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와 영상까지 대신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점점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실제인지 가상인지 구분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AI 시대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내세우다가 이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조차 넘보고 있으니 이제는 또 이런 말들이 많다. "나만의 취향, 관점이 중요해진다."
일상만큼 나만의 관점과 취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또 있을까? 똑같이 밥 먹고, 자고, 할 일을 하다 보면 돌아오는 주말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보내지만 그 모습이 모두 다르다. 그 일상을 짧은 단편영화처럼 영상으로 담는 과정에서도 또 취향의 필터를 한 차례 더 거친다. 누군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예쁘고 정갈하게, 또 누군가는 우리 집 주방과 어딘가 많이 겹쳐 보이는 기시감과 친숙함을 보여준다. 전자라고 해서 인기가 꼭 많은 것도 후자라고 해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것도 아니다. 유튜브 속 세상은, 콘텐츠 세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취향과 관점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추가로 하는 말은 이렇다. "이제는 남이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걸 꾸준히 밀고 가세요." 아휴 어려워. 학생 때는 정답이 있는 공부를 했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정답은 없지만 사람들의(소비자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지표를 나침반 삼아 머리를 싸매고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게 중요하다뇨? 주인의 뒤를 열심히 쫓아가다가 덜렁 남겨진 강아지의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세요, 너무 달콤한 말인 동시에 나처럼 살아온 수만호 (아마도 거의 모든) 한국인들에게 이 어찌나 무책임한 말인가 생각도 든다. 이제 와서 내 것을 보여주라니, 나만의 취향을 가꾸라니.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고민인 우리에게 "이제 너의 것을 보여줘!" "너의 세상을 펼쳐봐!" 라니. 평균에서 멀어지지 말라고 지독하게도 밀어붙이더니 이제 와서 통통 튀는 나만의 것을 보여주라뇨!
그래서 한동안, 아니 사실은 현재진행형으로 영상을 올리고 다음 영상을 생각할 때마다 고민스럽다. 지극히 평범한 내가 보내는 이렇게나 평범한 삶을 보여줘도 될까. 재미가 있기나 할까. 볼 만한 가치나 있을까. 괜히 좋은 장비라도 들이면 같은 걸 찍더라도 뭐라도 더 특별해 보일까 싶어 몇 날 며칠 당근과 중고나라 뒤지기도 했다. 좋아하는 유튜버들의 장비를 물어보는 누군가의 댓글에 대한 답글을 더 유심히 보기도 했다. 그러다 괜히 장비부터 빵빵하게 들이는 초보 유튜버가 되고 싶진 않아 다시 마음을 접는다.
소재와 글감까진 아니더라도 큰 틀이라도 정해져 있는 회사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와 달리,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달려있다. 어떤 장면을 어떤 구도로 찍고, 그다음 장면은 무엇으로 할지, 이 장면을 얼마나 오래 보여줄지 등 촬영과 관련된 부분부터 자막과 말로 부연하고 전하는 내용적인 부분까지. 쉽게 볼 일이 아니다. 내가 제작사이자 영화감독이자 촬영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자 배우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니 찌릿한 짜릿함이 든다. 어라, 브이로그 생각보다 더 멋진 일인데? 1인 다역의 원맨쇼, 나만의 디너쇼, 나만의 독립영화라.. 막연하고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내 손안에 모든 게 달려있다는 무한한 자유로움이 기분 좋은 낯설음이다.
망해도, 손익분기점에 한참을 못 미쳐도 가슴에 품고 있는 망한 영화가 감독님들마다 있기 마련이다. 나는 좋았는데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운의 작품. 그렇다고 쓸모없고 폐기되어야 하는 졸작인가? 한낱 햇병아리 브이로거인 나는 손익분기점이랄 것도 없다. 종종 내가 돌려보면서 내가 제일 재밌어해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라고 말하지만 관심은 언제나 환영이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재밌게 해 보자는 거다. 이것만큼은 눈치 보지 말고, 최강록 님의 말마따나 평생을 눈치 보고 살았는데 이것만큼은 내 멋대로 해보자고. 이건 다짐의 글이다. 또다시 욕심이 고개를 들어 재미를 눌러버릴 때 다시 보라고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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