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의 일상
퇴사하고 3달이 되어간다. 퇴사하고 맞이한 겨울은 춥고 무기력하고, 실제로도 추운 날들이 계속 이어져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졌다. 다음날 한파가 예정되어 있을 때면 따뜻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함이 차오르지만, 또 어떤 날엔 집이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소파에 앉아 거실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그림처럼 멈춰있다. 집에서 보는 세상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지루할 정도로 평화롭고 한결같다.
누군가는 호강에 겨웠다는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침대 밖을 나가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요청하는 연락도 오지 않는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배고프다면 당장이라도 냉장고를 열어 먹을 수 있고, 답답하면 언제든 박차고 나가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사치스러운 삶이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무료한 삶이다. 그런데 무료한 삶이 나를 정말 무료로 만들어간다. 나의 가치가, 속된 말로 나의 몸값이 하루가 멀다 하고 뚝뚝 감가상각되면서 값비싼 유료가 아닌 무료가 되어간다. 노동하지 않는 삶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눈을 씻고 통장 내역을 봐도 10원 한 장 내 힘으로 끌어온 것이 없는데. 삶의 가치는 숫자가 아니라지만, 그럼 무엇으로 매겨야 할까.
집에서 먹는 밥 한 숟갈, 반찬 한 입조차 내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날엔 속이 허해도 입맛은 뚝 떨어진다. 따뜻한 난방이 돌아가는 집에서 시시껄렁한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지금 내 힘으로 누리고 있는 건 하나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꽂히면 분명 방금 전까지 재밌게 봤는데 급격히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그냥 TV를 끄고 가만히 있는다. 다리를 올리고 한껏 웅크린다. 마치 이런 내가 여기에서 누려도 되는 건 딱 이 정도의 넓이뿐이라는 듯이 쪼그리고 앉는다. 퇴사 후 공백기는 사람을 그렇게 작게 만든다.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많은 오프라인 사업들은 기울었고, 대신 집을 꾸미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상품화한 사업들은 그 수혜를 입었다고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그 일상에 적응해야 하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 역시 집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 집 구석구석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여긴 가리면 더 예쁠 것 같은데, 저기는 좀 휑하니까 뭘 달면 좋을 텐데. 다이소에서 얇은 천을 구해다가 액자 안에 넣고 어울리는 사진을 대 본다. 패브릭 액자가 요즘 유행인지 SNS에 자주 보이고, 방법도 어렵지 않아 보여서였다. 눈에 계속 거슬렸던 주방 옆 세탁실은 열심히 손품 팔아 찾은 가림막 커튼으로 가렸다. 주방에서 훤히 보였던 덩치 큰 워시타워가 가려지니까 한결 낫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요리조리 집 안을 뜯어보니 마음에 퍽 든다. 주방 인덕션 옆 벽에는 작은 조명을 하나 걸었다. 인테리어의 반은 조명이라고 했다. 불을 끄고 조명 하나만 탁 켜보니 '오늘의 집'에서 많이 본 느낌이 난다. 감옥처럼 느껴졌던 집이 그제야 아늑한 내 집처럼 느껴졌다. 작고 낡고 답답했던 구축집이, 아담하고 정겹고 아늑한 우리 집처럼 보였다.
작은 변화가 생겨 괜히 신이 났나, 기세를 몰아 식사 준비도 기똥차게 해 본다. 예쁜 접시를 꺼내고, 둔한 손끝을 어설프지만 부지런히 움직여 요리했다. 그리고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필요한 재료 중 그 무엇도 내가 기여한 건 없지만, 요리를 내가 했잖아. 내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한 접시잖아.
가족과 남편이라는 단단한 지지대이자 푹신한 에어매트 위로 매일을 엎어지고 구르고 뛰어논다. 그들이 만들어 둔 기반을 뿌리 삼아 가지를 뻗어야 한다. 여기저기에서 재료를 다 마련해 줬다면, 나의 역할은 그다음. 그들에게 감사하며 신나게 나만의 요리를 해야 한다. 썰고 볶고 조리고 튀기고 웍질을 하면서 신나게. 익힘 정도는 이븐 하게. 그리고 완성된 요리를 그들에게 가장 먼저 맛 보여줘야지. 이 아담하고 정겹고 아늑한 우리 집을 그 무대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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