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독감에 걸리는 걸 좋아했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냐마는, 독감 그 자체를 좋아했던 건 당연히 아니고 아픈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돌봄을 좋아했다. 코가 조금 막히고 목에 가래가 끼는 일반 감기와 달리 독감은 열이 펄펄 끓어 도무지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잠이라도 자고 싶지만, 그조차 어려운 것이 독감이다. 어렸을 때 독감에 걸리면 엄마는 잠 못 드는 내 옆을 새벽까지 지켰다. 세숫대야에 찬 물을 담아와 손수건을 적신 뒤 꼭 짜서 내 머리 위에 얹어줬다. 그리고 자장자장- 읊조리며 손으로 토닥토닥하다 보면 차가운 수건은 뜨거운 이마 위에서 금세 미지근해졌다. 찬 물에 다시 수건을 갈아주는 그 시간이 나는 어쩐지 늘 좋았다. 엄마는 잠을 줄여가며 나를 지키느라 피곤했겠지만. 새근새근 잠에 드는 날도 있었지만 좋아서 졸려오기는커녕 정신이 더 말똥말똥해지는 날도 있었다. 어린 나는 어두운 방에 혼자 자는 걸 싫어했는데, 독감에 걸리면 엄마가 오래오래 옆에 있어주니까 그래서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작년 연말에는 a형 독감에 호되게 걸렸었다. 더 이상 독감이라고 엄마를 찾을 수 없는 어른이 된 나는 독감이 유행한다는 소문에 마스크를 꼭꼭 끼고 다녔건만 어딘가에서 방심한 사이에 걸리고 말았다. 하필 이번 독감은 살면서 겪은 독감 중 가장 지독했다. 오한과 몸살 기운이 있어 컨디션이 안 좋은가보다, 하고 말았다가 된통 당했다. 몸이 조금 안 좋은 거겠지 - 생각하고 초대받은 집들이에 꾸역꾸역 가자마자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속은 심한 배 멀미를 하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눈두덩이 주변이 뜨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버티고 버티다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로 대피했다. 남의 집 화장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숨을 가쁘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정신을 붙잡았다. 조금 괜찮아져 자리로 돌아갔다가 30분 뒤에 다시 화장실로 뛰쳐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예상보다 일찍 파하게 된 자리에 안도하며 마지막 힘을 내서 집으로 가 쓰러지듯이 누웠다. 옆을 지켜주는 엄마도, 차가운 물수건도 없으니 이제 독감은 더 이상 좋아할 구석이 없다. 걸리지 않게 요리조리 필사적으로 피해 다녀야 할 뿐이다.
과음 후 숙취에 절여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분명 나는 가만히 누워있는데 침대가 핑핑 도는 것 같은 느낌. 골이 360도 돌고 흔들리는 느낌. 그날 새벽엔 숙취로는 비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청기백기 놀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체온 때문에 이불을 시도 때도 없이 덮었다가 팽개쳤다. 밤새 그렇게 난리부르스를 치다가 결국은 항복하고 진통제를 먹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 연말에는 독감이 아니더라도 힘든 일은 많았다. 독감이라는 놈이 조금만 눈치가 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땐 일로도 사람으로도, 강박적인 불안이 극도에 달해있었다. 여름부터 서서히 먹구름처럼 깔리던 불안이 짙어지고 쌓이다가 빵 터져버렸다. 온갖 잡생각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잠에 들면 꿈속에서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깨어있는 것보다 자고 있는 것이 나았으니까. 하지만 아침이란 놈 역시 눈치가 없어 매일 성실하게 문을 두드렸고 나는 끝까지 외면하다가 마지못해 일어나곤 했다.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던 그 새벽, 얼른 이 아픔이 지나가길 기도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차라리 몸이 아픈 이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복잡하면 일단 몸을 움직이라는 말이 있듯, 육체적으로 시달리면 그때만큼은 쓸데없는 상념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상념이란 게 들어찰 여유조차 없다. 몸을 쓰면 정신은 잠시 잊히기도 하니까.
펄펄 열을 내며 독감이 기승을 부리다가도 그 열이 한 김 내려가는 순간이 딱 생긴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증막에서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맥이 탁 풀리는 것처럼. 뜨거웠던 이마가 미지근해지고 경직됐던 몸이 풀리면서 뻐근함이 몰려온다. 코끝의 후끈한 공기가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면 비로소 몸이 절정을 지나 회복기로 들어선 것이다.
한바탕 식은땀을 흘리고 나니 몸 안의 독소란 독소는 다 빠진 것 같았다.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생각했다. 이 난리통을 겪고 나니 마음을 괴롭히던 묵직한 것들도 조금은 덜어진 것 같다고. 정신이 너무 힘들어하니 잠시 쉬라며 몸이 대신 힘들어준 것 같다는 착각도 들었다. 그땐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파버리니 완전한 바닥을 친 것 같았다. 힘든 김에 한 번에 힘들어라 이건가. 연말만큼은 곱게 보내게 해 주지 독감까지 세트로 와버리네. 이런 게 액땜이라면 아주 제대로 된 액땜을 치른 것 같다. 하지만 저점을 겪은 사람일수록 오히려 홀가분하다. 이 정도까지 내려왔으니 앞으로는 올라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공지영 작가님의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 시궁창에 빠져본 일 있냐? 난 있다. 물이 생각보다 뜨뜻하데. 그 기분 너는 모를 거다. 더는 더러워질 수 없는 느낌, 더는 모욕당할 수 없는 평화. 그건 좋은 거야. 그리고 거기서부터 정말 우리는 시작하는 거야."
해가 바뀌는 순간, TV로 보신각 종소리를 듣고 바로 정동진으로 향했다. 지난 몇 년 간은 이미 대낮처럼 밝아졌을 때 눈을 뜨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올해만큼은 꼭 첫 해를 보고 싶었다.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었다. 2025년에서 2026년이 되는 것은 실은 종이 한 장보다도 차이가 안 나는 연속적인 시간이지만 올해만큼은 완전히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는 것 같았다. 아니 펼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새해라는 건 리셋을 원하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니까.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에 딱 좋으니까. 양손에 핫팩을 쥐고 발을 동동 거리며 기다린 일출은 가려진 곳 하나 없이 선명하고 커다랬다. 더는 가라앉지 말라고, 더는 가라앉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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