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換骨脫胎)? 아니, 55 탈퇴!

나의 화려했던 시절은 단돈 3만 원이었다

by 어쩌다 고수

나는 모태마름 체형이다. 키 165센티의 48킬로! 55 사이즈. 중학교 3학년부터 30살까지는 그랬다. 콜라병과 같은 볼륨감이라고는 1도 없지만 그래도 누구나에게나 ‘날씬해서 좋겠어요~’ 소리를 들었다.


30대가 되고나서부터는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태마름의 유전자를 믿고 평생 숨쉬기 운동만 최선이라고 살아온 나였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55를 고수했다. 배 조금 나왔다고 66 사이즈로 넘어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옷을 살 때도 30대까지는 정확한 치수 따위를 보지도 않고 55를 주문했다. 나는 55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돌 같이 뼈마름으로 44는 평생 도전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55였다.


그런데 이게 애를 낳고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를 품고 있던 40주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옷이 안 맞았다. 나의 수많은 55들이 나를 품어보려 했지만 바지 위로 뱃살이 기어 나오고 양쪽 주머니가 벌어졌다. 임시방편으로 아주 쫜득하고 쫀쫀한 거들로 살들을 정리하고 입어보았지만 그렇게 나의 살들을 구겨 넣고 나갔다 온 날은 하루 종일 소화가 안 되고 복통에 시달렸다.


육아기에 접어들기 전 나는 어떤 결핍이 있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옷을 많이 샀다. 다다익선이라고 했던가. 세일이라는 단어만 보면 설레어서 최저가로 구매하고 나서 나 자신을 ‘쇼달‘(쇼핑의 달인)이라며 그 시절 자존감을 올리고 있었다. 그랬던 나의 옷장 속 55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비싸고 좋은 것은 없지만 나의 옷장 속 55들과 함께 나의 자존감도 함께 떠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숨쉬기 운동을 제외하고 그 어떤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 출산 후 커진 내 떡대와 토성 주변 암석들로 이루어진 토성의 고리처럼 배꼽을 중심으로 내 셀룰라이트들로 구성된 배둘레햄은 더 이상 55안에서 공존할 수 없다.


육아기에 접어들며 한껏 늘어남 아이 짐으로 24평이라는 나의 좁은 집도 더 이상 나의 55들을 품을 수 없었다. 나는 의류수거앱을 가입하고 나의 55들을 분리수거날 주워온 가장 큰 공청기 박스에 담아 떠나보냈다. 55들을 정리하자니 택도 안 뗀 옷들도 더러 있었다. 미친 건가?


나의 화려했던 55들은 우리 아파트 누군가의 집안 공기질을 개선하고자 노력 중인 대형 공기청정기 박스 2개에 담겨 의류수거 업체로 보내졌다. 얼마 후 의류수업업체에서 나에게 50 킬로그램이 넘는 55들에 대하여 3만 원 남짓한 돈을 입금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화려했던 55 시절을 3만 원과 맞바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두쫀꾸가 가져다준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