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리뷰, 스포 있습니다
영화가 특별한 메시지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정치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저 웃기거나 무섭게 만들면 족하다는 이야기일수록 이야기 속에 담긴 시선을 더욱 노골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주인공이 살인마에게 쫓기는 이야기는 그 설정만으로 서스펜스를 치솟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주인공이 ‘할 수 없는’ 부분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고구마스런 자극에 집착하는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도 컸다.
이 영화가 그러한 ‘고구마’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본다면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배치되어 있고 배분에도 신경을 썼다. 적어도 고구마를 먹이는 것이 유일한 자극인 것으로 아는 게으른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성실함은 소재에 대한 예의로도 이어진다. 가로등불 아래의 비상버튼을 활용하는 장면이라던지 그밖에 주인공이 사용하는 보조도구를 활용한 연출은 인상 깊기도 하고 이야기 전개를 조금이나마 지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보이게’라는 표현에서 짐작하겠지만 진짜로 논리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보면서도 에이~ 저럴 때는 저렇게 굴면 안 되지라던가 저런 우연이 있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특히나 비교대상이 김하늘 주연의 ‘블라인드’라면 더더욱 그렇다. 적어도 같이 하면서 이야기의 진상을 추측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 전개 과정에 따라 풍기는 장르적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도 정통적인 도망 액션을 기대했을 사람이라면 갈지자같이 여겨질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난 익스큐즈 했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난 이 영화가 어느 정도 휘젓고 다니는 분위기 속에서도 어떤 일관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 나름대로 가졌을 주인공과 사회에 대한 관점이다. 그리고 그 관점은 (아슬아슬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판단을 마친 후 내뱉는 꼰대스러움으로 표현되는데 그치지는 않는다. 세상은 영화 속 클리셰처럼 굴러가지 않기에 시퀀스 안에서 얼핏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방향을 쓱 틀어버리면서 자극을 주며 캐릭터들을 시험한다. (그리고 클리셰를 깨는 경제적인 작법이기도 했을 테니!)
하지만 이처럼 이야기 내내 듬뿍 신경을 쓴 부분이 되려 주인공에 대한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다. 계산되어 있고 인물의 역할이나 비중도 나름의 기준에 의해 신경 써서 배치했다는 것이 티가 너무 난다. 그래서 지적인 대결이라던가 유려한 흐름을 가질 스릴러를 기대했을 사람이라면 아무튼 그쪽 키워드는 아닌 작품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들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영화의 구조나 톤이 괜찮았다. 일단 이야기의 말이 안 됨은 앞서 언급했듯 익스큐즈, 어떤 단계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틀지, 그리고 그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재미가 컸다. 최소한 작가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위반되는 전개는 없었고 (그 내용이 실제로 ‘말이 되느냐’랑은 별개로) 무엇보다도 작가가 지녔을 의식과 현실에 대한 인식이 지금 사회에서 우리 주변의 삶을 되짚게 만드는 화두를 던 저줄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정리하자면 뻣뻣하고 통제되어 있는 삘이 심했지만 그래도 자극이라는 점에서도, 메시지라는 면에서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오력이 인상 깊고 조금 더 ‘내 주변’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느꼈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