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리뷰, 스포일러 없습니다
지난 번에 일본 공포영화 <온다> 리뷰를 올렸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일본 공포영화를 보게되었다. 이 영화도 <온다>와 마찬가지로 관객 입장에서 주인공 무리에 대한 감정 이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두 작품에 담긴 의도를 느낀대로 이야기 하자면 <온다>같은 경우는 감독의 살짝 배배꼬인(?) 인간관을 표출하는 과정, 이쪽은 뻔한 재료인 걸 알고 있으니 너무 기대 말고 즐겨 주십시오 같은 인사로 느껴졌다.
영화는 놀이공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진짜로 놀이공원 스릴 기구 투어 같기도 하다. 뼛속까지 무섭다기보다는 어쨌든 어른이 된 다섯명의 여인이 원혼으로부터 공격받는다는 이야기니 거기서 오는 기본적인 스릴이나 긴장감을 체험하는 과정이랄까. 엄청 얄팍한 이야기고 원혼의 동기도 무지하게 일본적인 한마디로 정리가 되니 (여섯명의 고딩 중에 한명이 나머지 다섯에게 원한을 품을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적인 감흥 같은걸 진지하게 기대할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하늘도 알고 나도 아는 큰 이야기를 주욱 따라가는 흐름으로 되어 있는데 이 흐름이 개인적으로는 제법인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짜임새 있게 느껴졌다. 살생부의 흐름, 시청각적 충격의 배치 그리고 공포영화라면 으레 나오는, 쟤는 왜 저렇게 말또 안되는 짓을 하는거지? 싶은 개연성. 뭐 이 영화도 그런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적어도 작년에 봤던 ‘컨저링 유니버스’작품들에 비해서는 대체로 말이 되게들 행동하는 편이다.
그리고 성의있게 느껴진게 타이밍, 예를 들자면 영화 속에서 어떤 여인이 금기를 어기고 둥둥둥둥둥 사운드가 고조된 끝에 귀신이 낚아채가는 신이 있다고 치자. 근데 이 영화는 이런 사운드 흐름이 끝나자 마자 액션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라 한타임이나 그 이상 페이스를 홱 바꿔 버린다거나 뜸을 들이는 식으로 타이밍 러시를 곳곳에 숨겨 두었다. 이런 부분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서 러닝타임을 효과적으로 메워 주는 것 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주인공 일행이 맞닥뜨린 현실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어 준다.
일본 공포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느껴졌던, 피해자에 대한 동기와 행동이 불분명한데서 오는 어떤 억울함이나 허무함 같은 정서가 여기엔 없다. 그래서 소재나 캐릭터는 일본적이지만 영화의 흐름은 차라리 서구 공포영화 같아 보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에 브런치를 갖는 주인공 일행이 ‘우리가 외국남이랑 사귀면 우리보고 스시 만들어달라는거 아이가 ㅋ‘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영화의 기획이 일본식 소재를 나름 글로벌 스탠더드 시각으로 만들어보자 는 방향으로 느껴져서 별것 아닌 대사이었겠지만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추가로 사람에 따라선 장점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영화의 잔혹성이다. 아무래도 국내 개봉되는 서구 공포영화들은 15세라 하더라도 피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뜨악 할만한 장면이 한두개씩은 있개 마련이다.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는 확실히 ’마일드‘한 편이라 징그럽고 피 많이 나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아마... 대부분 영화의 자극을 좋은 의미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 경우에는 12세 블록버스터였던 ’알리타 배틀엔젤‘이 이 영화보다 더 잔혹하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어른이라면 놀이공원에서 기구가 주는 감흥을 대부분 알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체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간다. 서두의 언급을 다시 끌어오자면, 놀이공원을 테마로 하여 진행되는 이 영화는 그 소재에서부터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같아 보인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껍데기밖에 없는 영화라니! 할 수 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기대하지 않고 배 채울려고 산 길거리 음식정도 기대를 했는지 짧게나마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