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리뷰, 인물 생사에 대한 스포 없으나 영화 전개에 대한 암시 있습니다
초반 15분 정도를 못 봤다. 아마 이 영화를 지배하는 불행의 근원이 되는 남자의 어릴 적 에피소드가 나왔을 거라고 예상한다. 어차피 못 봤으니... 일단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 위주로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참 잘 만든 영화라고 느꼈다. 기술적으로 딴딴하고 마감까지 꼼꼼하게 잘 된, 다만 이 잘 만들었다는 범주에 ‘여운이 남는 깊이를 갖춘 이야기’는 빠져 있다.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다 싶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부부의 초중반 설정은 지금 사회가 맞닥뜨린 병리적 현상을 상징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인스타에선 ‘좋은 아빠’ 코스프레에 열심히지만 회사 직원과 바람피우면서 일요일마다 집안일은 나 몰래라 싸돌아 다니는 남편, 그런 남편으로부터의 가정적, 사회적 압박을 감당치 못해 스트레스가 삐쳐 나오는 엄마 이야기는 그 소재만으로도 뜨끔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다. 특히나 이러한 남편 캐릭터와 함께 남편 캐릭터를 대하는 아내의 캐릭터에서 정말 정말 일본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일본인이었다면 이 소재를 훨씬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 속에서 이러한 인물에 잠재된 깊이를 끌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아니 애초에 그런 부분에는 별 관심을 두지도 않은 것 같다.
이런 접근은 감독만의 어떤 의도된 스타일일까? 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 재미있게 본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보면 이쪽도 이야기 자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드는 신파적인, 더 나아가 그런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사회적인 이슈에까지 닿을 수도 있는 재료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정작 그런 무드라곤 온데간데없이 내내 화려한 뮤지컬로 범벅해 놓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마츠코 같은 경우는 그런 비주얼 이면의 비터 스위트 한 정서랄까 하는 부분들을 아예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소금을 쳐서 더 달달하게 느껴지는 팥죽 같은 부분도 있었다.
그에 반해 이 영화에서 흘려보내는 이야기의 톤은 선악을 떠나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어떤 적절한 선에서 일부러 차단하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주인공 부부는 긍정적인 인물은 아니다. 특히 남편은, 아내는 참작의 여지가 많지만 역시나 결백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 내에서 이들의 취급은 거의 이야기의 신이 가지고 농간하는데 재미 붙인 게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든다.
이야기의 신이 가지고 논다는 부분을 좀 더 말하자면 이 영화의 전개는 거의 시작부터 끝까지 예상치 못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의 스케일이나 인물이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라던가 갖가지 방법으로 자극을 하는데 여기엔 물론 시각적인 자극도 있다. 청불이니까 피도 당연히 나온다. 하지만 잔인함도 감독의 포켓에 있는 수많은 도구 중에 하나일 뿐이다. 맥가이버 칼처럼 이야기의 내용적인 부분이던 연출적인 부분이던 영상물로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총동원되어 끊임없는 자극을 준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부분을 하나 꼽자면 편집이다. 요즘 주류 영화계 트렌드를 감히 이야기해 보자면, 재작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로마’를 필두로 편집자가 크레디트에 왜 있냐는 농담(?)까지 나온 ‘1917’ 같은, ‘한 듯 안 한 듯’한 편집이 대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그런 기조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일단 컷 자체도 많은 편이지만 순수하게 편집의 힘으로 영화적 요소들을 강조하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깊은 인상을 준다. 그 타이밍이라던가 이야기를 나누는 공격적인 테크닉이 너무나 돋보여서 전개되는 내용마저 잊을 만큼!
그래서 종합적으로는 의외의 스케일과 엄청난 포텐셜이 있는 이야기를 오로지 관객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주기 위한 영상물의 재료로만 각 잡고 제련해 낸 어떤 오기마저 느껴지는 작품이랄까. 물론 소재 자체의 힘이 있으니 여기서 사회적인 의미를 읽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말미 남주의 대사 ‘이건 그냥 어린이 장난이잖아요!’가 감독이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힌트가 아니었나 싶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너무나 풍족한 테크닉의 향연이라 막판에는 오히려 살짝 지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딴딴하게 잘 만들어진 재미난 ‘영상예술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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