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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Jan 27. 2020

영화 악인전 이야기

(예고편에 나오는 수준의 스포 있으며 영화 구성에 대한 암시 있습니다)


 싸움 구경은 재미있다. 싸우는 과정 자체에서 박진감을 느낄 수도 있고 싸우는 대상 중에서 한쪽의 편을 들면서 이길까 질까 마음졸이는 재미도 있다. 악인전의 전반 40%정도까지 내가 느꼈던 재미는 후자에 가깝다. 영화의 기본 설정만 보면 내심 형사의 승리를 바라게끔 유도할 것 같지만 아니다. 영화 속의 악인들중 가장 심정적으로 동참하게 되는 캐릭터는 마동석이 연기한 조폭 보스다. 하긴 영화가 법의 집행자들보다 어둠의 세력쪽에 더욱 매료되는 관점 자체는 한국 영화계에서 낮설지 않다. 당장 조폭이 주인공이 되어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이야기가 명절마다 한국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던 시기가 있었다. 조폭을 노골적으로 암시하지 않더라도 어딘가 사회의 어두운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 로 범위를 넓히면 사례는 더욱 많아진다.   

 다만, 이 영화에서 마동석에게 심정적으로 기울어지는 요소는 적어도 언더독에 대한 환상이 빛은 노골적인 미화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아니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거의 못느꼈다. 적어도 앞서 언급한 40%지점 까지는. 조직폭력배에서 폭력쪽 보다는 조직에 방점을 두고 그룹의 ‘운영자’로서 보통 관객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마동석을 조명하는 이 관점 덕분에 마동석은 분명히 암흑가를 누비는 위협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에서 비교적 상식인 포지션을 잡게 된다. 마동석의 주변인이 하나같이 전형적인 조폭영화 인물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대비효과도 든다. (심지어 마동석은 욕도 거의 안한다! 조폭치고는 수준도 아니고 거의 올해 본 청불영화 남자 주인공을 통틀어도 3손가락 안에 들 정도)
 그리고 그 대비에는 경찰 김무열도 있다. 그리고 김무열은 초반에 나의 마음을 거의 사로잡지 못했다. 하나는 그냥 행동거지가 조폭이랑 다를 바 없어서였고 둘째는 그 조폭 같은… 그러니까 법의 수호자인데 고결한 슈퍼맨이면 관객의 손발이 오그라들 테니 욕도 걸게 하고 좀 쎄게 나오는 캐릭터가 여기 있다! 는 영화 내 태도 자체가 너무 익숙해서 진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기쪽도 마동석이 훨씬 와닿는다. 차라리 김무열이 이놈 잡아서 승진해야지! 같은 말이라도 했다면 일말의 공감이라도 했겠지만… 경찰이 범인 잡아야죠!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면 나를 쑤신 놈을 찾아 복수하겠다는 마동석보다 임펙트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거기까지는 좋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찜찜함 없이 자연스럽게 마동석이 어떤 방법을 통해서 경찰을 엿먹일까? 그 과정을 그려 보는 재미도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 40% 분량이다.
 하긴 영화도 알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는 장면에서 이를 암시하는 대사가 나온다. 애초에 충청권 최대 조폭 보스 + 수사 노하우가 쌓인 경찰의 조합이라면… 그러니 이론상으로는 범인을 잡는 과정을 질질 끌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영화는 이 분량을 갖다가 온전히 범인을 잡는 과정으로 기어이 그렸다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그 과정에서 메인을 경찰 김무열쪽으로 잡아 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까지 보여준 마동석의 ‘상식’을 기반으로 한다면 금방 영화가 끝나버렸겠지만 그 결과는 뭔가 제대로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의 다운그레이드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수사 파트는 전혀 머리를 쓰는 구석이 없었다. NPC 수준의 여성 캐릭터가 답을 줄줄줄 읊어 주면서 김무열은 부하들 갈구는 것 밖에 하는게 없으니 추리 과정에서 얻는 재미는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도 기대했던 두 사람의 팽팽한 대결이 언급되지 않으니 이 무슨 전개인고?
 물론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 중에 인상깊은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장면들도 초반 40%를 보고 기대했던 부분과 맞지는 않는다. 더 나쁜 것은 이 분량 내에 마동석 비중이 적은 것도 있지만 그 적은 비중 안에서 마동석은 그냥 조폭물 힘쎈 아저씨 비슷하게 군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하향평준화.


 마지막 20%에 와서야 처음 40%를 보고 기대했던 부분이 매듭지어진다. 하지만 마동석 캐릭터에게 기대했던 부분이 많이 날라가서 몰입 동기가 약해지고 게다가 악인전의 3각 축인 사이코패스의 행동이 어이없는 수준이라 이야기 자체의 신뢰도가 확 떨어진다. 아닌게 아니라 사이코패스가 영화 중간에 한 어떤 행동까지는 그래도 섬뜩한 악의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가 저지른 마지막 범죄는 그야말로 ‘날 잡아 줍쇼’ 급이라 이쯤가면 이야기를 끝낼때가 되서 끝내는구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 대결의 결과를 그리는 과정도 분량이 너무 적고 (그놈의 의미없는 추리 파트만 줄였어도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페어플레이가 아닌 것 같아 대결의 결말 부분에서도 개운함이 아닌 뭐야 이게 끝? 이런 마음이 우선되고. 그래도 사이코패스에게 내려지는 마지막 처분은 나름 ‘멋’을 부렸다고 생각되지만 (내 추측엔 이 결말만큼은 처음부터 확실히 해 두고 각본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같이 제시되는 주제가 이렇게 갑자기 내세워도 되나? 싶은 부분도 있고… 오히려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이 보여준 견해와의 차이점이 흥미로웠다면 흥미로웠달까? 어떻게 어떻게 끝은 냈는데 엉뚱한 길을 돌아 온 듯 했다.


 영화가 타국에서 리메이크 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의도인지는 난 잘 모르겠지만 만약 리메이크가 나온다면 거기서는 영화 내내 두 사람이 악인을 잡기 위해 주도권을 쥐고 뺏고 하는 과정으로만 타이트하게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아무리 봐도 이 영화의 매력은 선명한 대결 구도 안에 진부한 조폭 형사물 세계와 대비되는 마동석 캐릭터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섯글자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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