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 이야기
유랑지구 - 무던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올 음력 설 연휴에 중국 박스오피스를 초토화 시킨 #유랑지구 가 지난 주 한국에 개봉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라 동 시기에 개봉한 다른 영화들과 함께 빠르게 상영관이 내려 간 영화중 하나다. 나는 엔드게임 개봉 이틀 전에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이미 부산에 두곳밖에 남지 않은 상영관 중 한 곳을 찾아 가야 했고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노력이 다행스러운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등장하는 얼렁뚱땅 남매와 그들의 아버지가 벌이는 행위가 주요 플룻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고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서 내 예상은 빗나갔다. 분명 다들 절실하게 뭔가를 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지구 멸망을 구한다는 최종 목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면에서는 산만하다고 볼 수도 있고 나도 돌이켜보면 후반부랑 비교했을때 집중도가 떨어졌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럭저럭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개별 장면이 주는 서스펜스와 냉혹하고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얼어붙은 세계와 고요한 우주 세계의 묘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리하자면 확실히 돈 들인 티가 나는 영화다. 쓰면서 생각난건데 영화 속 우주와 얼음세계의 비중도 잘 조율 된것 같다. 두 세계가 영화속에서 다루어지는 이미지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잘 섞이지 못했다면 엉망 진창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여기서는 맛있는 라떼가 되어 주었으니 성공인 것이다.
더욱 성공적인 부분은 두 세계를 다룬 묘사가 갖춘 기술적 완성도와 디테일 덕분에 인물에 집중했다면 산만하게 느껴졌을 이야기도 거대한 사건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캐릭터들이 지닌 사적인 이야기를 고려해본다면 이런 접근은 옮은 결정이기도 하다. 주인공 남매가 지닌 인물 이야기라 해봐야 아빠미워!! 내지는 넌 사실 친자식이 아닌... 같은 부류니까. 요런 이야깃거리는 영화에 따라서는 짜잔 하고 드러낼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덤덤하게 흘려 보낸다.
개별 사건에 포커스를 두지 않는 시선은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영화의 종반부에서 주인공들이 내세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슈퍼컴퓨터가 이미 고려했지만 그건 안됨! 하고 나오는 부분이 주목할 만 하다. 설정만 보면 기계가 아무리 잘나봐야 결국 인간이 위대하다! 정도에서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당연히 결말엔 주인공들이 내세운 프로젝트대로 실행되고 결과적으로 지구는 구원된다. 설마 이걸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영화는 왜 슈퍼컴퓨터가 그런 결론을 냈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이끌어왔던 특유의 톤으로 언급하는데 그 내용이 기계는 역시 (아직) 인간보다 열등해! 따위보다 훨씬 깊이있는 주제를 던저주는것 뿐 아니라 그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당면한 거대한 사건을 이어감으로서 여운을 남기기까지 한다. 이런 어조는 영화의 거의 마지막까지 지켜지기 때문에 마지막에 마지막에 가서 노골적인 신파 장면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 오글거림이 덜 느껴지는데까지 효과를 미친다.
결국 이 영화의 장점은 거대한 스케일을 구현한 기술적 완성도에 그만한 스케일을 견지한 채 사건을 관조하는 시선에서 나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떻게 이런 시선이 나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디테일한 부분까지 파고 들었다간 중국 공안의 검열에 걸릴 수 있으니까 그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 지도 모른다. (의심가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 장면도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살짝 귀여운 수준으로 뒤집어 버리긴 하지만) 어쨋든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유랑지구는 돈 쓴 느낌이 팍팍 나는 볼만한 영화로 아마 지금쯤 극장에서는 다 내렸겠지만 왓차플레이던 넷플릭스건 여러분의 두시간을 투자 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