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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Aug 24. 2020

영화 #남매의여름밤 이야기

롱리뷰, 캐릭터 설정에 대한 언급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눈높이를 맞춘다. 여러 선전 문구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아마 같이 부대끼고 사는 가족끼리도 이게 완벽히 되는 경우는 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는 등장인물에 눈높이를 맞추고 기준을 잡는 것이 현실보다는 더 편하게 이루어질 것 같다. 이를 인증하듯, 인종, 성별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체험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다.


‘남매의 여름밤’은 그런 점에서 관객의 시점을 주인공 사춘기 소녀로 맞추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작년에 나온 <벌새>만큼, 한 사람의 삶 속으로 확 끌어 댕기서 온전히 체감하게까지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거리는 내가 생각했을 때 의도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일단 영화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남매의 여름밤이지만 두 남매의 입장이 공평하게 분배된 영화는 아니다. 일단은 누나 쪽이 주인공이다. 남동생은 귀여운 구석도 있고 전체적으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진짜 남자아이로 움직인다기보다는 누나가 인식하는 ‘쪼까 속은 썩여도 귀여운 남동생 캐릭터’에 머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매라는 문구의 영향력이 영화의 타이틀로서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아버지에게도 여동생이 있는데 (즉, 주인공의 고모) 이 ‘남매’의 이야기도 주인공 ‘남매’의 이야기와 같이 흘러가면서 비교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쪽은 누나고 저쪽은 오빠니까 그런 점에서도 대비다)


영화 <집으로>가 온전한 자연 아래에서 벌어지는 1:1 소통의 과정이었다면 이 영화는 일단 그것보다는 더 복잡한 구도를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이사 간 곳도 시골은 아니고 교외지역이니 어쨌거나 사회의 테두리 안에 있는 거고. 등장인물도 더 많은데 하나같이 각자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 태도는 조금은 둥글둥글하지만 사람 냄새가 난다. 그런 휴머니즘스러운(?) 정서에서 풍기는 안도감도 영화를 즐기는데 버프가 되어준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소시민의 착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서민이기에 무심하게 저질러 버리는 어떤 악한 모습에 대해서도 덤덤하게 드러낸다. 오히려 덤덤하게 내보내 버렸기에 사람의 마음을 쿵하고 내려 앉히는 무게감도 있고.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이야기다. 그것은 결국 이 영화의 세계가 주인공 사춘기 소녀가 인지하는 범위 안을 아주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백하지만 이제 마냥 천진난만하지는 않은 사춘기 소녀, 그녀가 인지하는 평범한 기쁨과 평범한 악의 세계. 영화는 그 테두리를 벗어나 이 ‘인간들’에 대해 정의 내리고 소모하려는 시도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 세계가 자기 위안적인 결과로 빗나가지 않고 관객에게 설득력을 주게끔 하는 것이 바로 가족애, 사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한다. 사랑이라고 적혀있으니까 무조건 좋은 거야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무한하거나 완벽한 논리를 갖춘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그렇기에 그 나름이나마 지키고 싶고 소중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소녀와 소녀의 세계가 조금씩 파동을 일으키면서 변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한편으로는 관객으로서 그 과정을 체감하게 되면서도 완전히 소녀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만큼은 아니지만) 약간의 거리를 두게 만드는 점이 인상 깊다. 일단 그 자체로 좀 더 다양한 구성원의 이야기를 담은 전통적인 가족물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시선을 견지하였기에 마지막의 클라이맥스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지니게 만드는 감정이 있다. 눈높이를 맞추고 여름날을 건너가는 한때의 틴에이져를 주욱 바라보면서 단지 옆에서 나누어 짊어주고 싶은 마음, 어떤 뭉클함이 차오른다. 여기까지가 너의 이야기였구나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렴. 공감과 위로, 아픔 등등 영화가 제시한 모든 감정이 휘몰아치는 인상 깊은 결말을 만들어 낸다. 좋은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순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디영화’로서 이야기해주고 싶은 장점은 그 완성도다. 여기서 완성도라는 것은 극장에 관수 많이 잡히는 ‘상업영화’스러운 때깔로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좀 유명한 배우가 나왔다면 바로 시지브이에서 관수 많이 잡고 걸어도 될 정도다. 사실 아무래도 영화 프로덕션 또한 돈 들인 만큼 아웃풋이 나오는 분야일 테니까 저예산 영화라면 ‘비록 없는 살림에도 아껴가면서 열심히 찍었습니다’ 같은 느낌이 대걔는 조금씩 나게 (물론 그것도 스타일로 만들어 버리는 영화도 있지만) 마련이다. 근데 이 영화는 세트의 활용이나 색감 같은 부분도 딱 상업 영화스러운 깔끔함이 있다. 그래서 ‘애낀’티가 거의 안 난다.


게다가 이런 꼼꼼함은 연기지도에서도 드러난다. 또 아무래도 연기자를 섭외하는 부분에서도 예산의 영향이 있을 테니 특히 비중이 적은 배역일수록 발연기를 만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연기가 참 알맞게 잘 조율돼 있다. 두 커트 나오는 주인공의 남자 친구라던가 한 마디씩 하는 단역배우들도 연기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멀끔하게 연기 지도가 고르게 됐는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순전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템포면에서도 어떤 상업 영화스러운 감각이 좋다. 물론 소녀의 세계관을 뒤흔드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 1번이지만 순전히 ‘어 저게 뭐지?’ 하고 관객의 텐션을 확 올렸다가~ 말이 되는 뒤통수로 관객을 ‘이욜~’ 하게 만드는 재주가 좋다. 상업영화에서 좀 더 큰 프로젝트를 맡으시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된다.


남매의 이야기는 참 좋은 영화다. 그리고 ‘예술영화’에게 이런 표현을 쓸 때마다 약간씩 남겼던 어떤 거리낌이 전혀 없이! 많은 분들께 ‘재미도 있고 감동도 주는’ 영화로서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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