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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을 생각하는 습관

억누르지 말고 잘 활용해 보기

by 안나

남들이 알면 기괴해 보일 까봐 혼자 고이 간직하고 곱씹는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최악을 생각하는 습관. 어느 정도의 사회성을 겸비한, 지혜로운 30대 중반으로 보이기 위해 타인과 대화를 할 땐 긍정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대화를 지향하는 편이지만 사실 어떤 상황 속에서 종종, 아니 자주 '최악'을 항상 생각한다.


이상한 상사가 날 억울하게 할 경우 어떻게 뒤통수를 치고 회사를 그만둬버릴지 혼자 상상했고, 운전을 하기 전에 사고가 나게 될 경우 전복된 차량에서 어떻게 탈출할지 생각해 본다. 밋밋하지만 거슬리는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주는 인물과의 극단적인 끝맺음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사실 이 보다 더 최악을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대비하기도 하는데 아무리 글이라지만 스스로 내면 속에서만 지니고 싶은 내용들도 있어서 이만 생략해 본다.


최악을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 창피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숨겼다. 내면에 거친 자아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오히려 난 겁이 많은 사람이고 그로 인한 방어기제 같은 거였던 것 같다.


'긍정적'인 회로를 억지로 돌려서 다 잘될 것이라며 어떤 일에 뛰어들었는데 복병을 만나 상처를 받거나, 실패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단 최악을 생각해 봐야 (상상한 최악의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그보다 약한 차악의 상황을 겪었을 때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내 마음이 겨우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습관은 출산을 경우 보름 정도 남기고 있는 지금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기를 낳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산후 우울증에 걸려서 방황하진 않을까, 더 나아가 아기가 자라서 내가 사춘기 때 부린 객기를 그대로 부리진 않을까. 온갖 무서운 상상을 다 하다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면 차오르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만한 에세이 책을 읽거나, 초록색 식물들로 둘러싸인 정리가 잘 된 누군가의 SNS 속 평온한 공간 등을 찾아보며 따듯한 차 한잔을 우려 마시곤 한다.


특이하다 생각해서 숨기고 싶던 습관이 사실은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보니 요즘은 창피하다고만 생각했던 이 습관을 적당 선에서 잘 활용해 보는 중이다.


세 보이고 싶었지만 사실은 겁 많고 여리던 내면의 나를 투명하게 바라보며 억누르던 것들을 다독이는 것. 복잡하던 머릿속은 비워지고 쉽게 동요하던 마음 또한 차분해진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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