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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립밤

by 안나

태어난 지 겨우 한 달이 된 아기를 키우다 보니 쨍한 햇살을 창문 밖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꼼지락 거리는 작고 말랑말랑한 아기의 발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 카페테라스에서 딱 커피 한잔만 하고 싶다." 며 중얼거려 본다.


잠투정을 하다가 겨우 잠든 아기는 품 안에 폭 안겨 색색거린다. 작은 몸에서 나오던 우렁찬 울음소리가 가시고 나니 적막함이 흐른다. 분유포트의 물 끓는 소리와 젖병 소독기의 알림 소리만이 귓가를 잔잔하게 자극할 뿐.


잠시 찾아온 고요함이 반갑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며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남 같았다. 대충 올려 묶은 머리. 아기가 하도 잡아당겨서 늘어나버린 티셔츠 목선. 며칠 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눈 밑에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 그리고 생기 없이 메마른 입술까지. 몰골이 말이 아니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다.


품에 안은 아이를 침대에 눕힌 뒤 다시 우엥하며 울음을 터뜨릴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작은 몸을 열심히 토닥인다. 아기가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난 뒤 내적 쾌재를 잠시 만끽한다. 짧은 틈에 쪽잠을 잘까 하다가 널브러진 아기 손수건들과 싱크대에 쌓여있는 젖병 설거지거리 등을 치다.


어질러진 집처럼 초췌해진 내 모습에 갑자기 속이 상해 화장대로 향했다.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진 메이크업 제품들을 괜히 만지작 거려보다가 올해 초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옅은 분홍빛 컬러 립밤을 집어 들었다.


메마른 입술에 촉촉함이 더해지며 약간의 분홍빛이 물들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 속에 동동 거리며 기저귀 갈기와 분유 타기, 젖병 닦기, 안아 달래기를 반복하던 일상 속에 내 잠과 식사는 항상 뒷전이었다. 특히나 새벽수유로 인해 반복되는 수면 부족로 눈물이 찔끔 나오려던 찰나였다.


입술에 옅은 생기를 띄어준 뒤 잔잔한 음악을 틀고 소파에 던져진 채 잊혀가던 책 한 구절을 읽 냉장고 속에 있던 초콜릿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다시 조금씩 살아나는 같았다.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진다는 부정적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긍정회로를 돌릴 원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컬러립밤 같은 것들이 필요.

이성을 놓지 않기 위해 기회만 되면 조금씩 눈을 붙이며 쪽잠이라도 청해보려 한다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잠시라도 듣는 것들에 소홀하지 않으려 발버둥 쳐보기. (실제로 아기띠를 둘러멘 채 짧게나마 음악에 심취해 보는 것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더불어 끼니 거르지 말라며 부모님이 챙겨주신 반찬거리, 이웃이 건네준 따듯한 군고구마와 친구들이 문 앞에 조심스럽게 두고 간 봄을 담은 튤립, 산후관리사님이 마지막날 선물해 주신 샛노란 프리지아. 그리고 작디작은 내 아기의 커다란 미소와 말랑말랑한 살결. 이러한 것들이 메말라 가는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회색빛에 잠식되려던 찰나 다시 분홍빛으로 물든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 열심히 영양제도 챙겨 먹고 틈틈이 짧은 스트레칭도 해준다. 컬러 립밤과 같은 것들에 집중하며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해 보기로 하며.



[이미지 출처 -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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