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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띠 외출

by 안나

아기가 100일이 지난 요즘. 집안에서만 오랜 시간 있다 보면 통통해진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며 찡얼거리기 시작한다. 지겹다는 몸짓이다.


아기띠를 허리와 어깨에 두르며 "나가자!"를 외치면 알아듣는 건지, 내 기분 탓인지 씩 입꼬리를 올리며 꺄아 소리를 내며 팔과 다리를 신나게 버둥거린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 달이 지난 무렵부터 조금씩 집 앞 산책을 시작했다. 아기를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사실 내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아서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골목이며 도보 10분 거리인 친정에 왔다 갔다 하는 선에서 바깥바람을 쐬곤 했다. 잠시 분위기를 전환해 주니 집 안에서는 계속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치며 푹 잠에 들었다.


예민한 성격인 나는 임신 기간 동안 SNS 등에 끝없이 올라오는, 아기와 외출 시 겪은 부정적 경험들을 접하곤 한껏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모르는 할머니가 아기 양말을 신기지 않았다며 등짝을 때렸다거나, 쓰레기봉투를 든 손으로 아기 얼굴을 만지거나 뽀뽀를 했다는 등의 사례들. 물론 아주 극 소수겠지만 새끼를 갓 낳은 개와 다름없던 내가 사나워져 있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현실의 아기띠 외출은 다양한 면에서 흥미로웠다.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던 무뚝뚝한 표정의 타인들에게서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지루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여다시던 편의점 사장님은 아기띠 속에서 두리번거리는 작은 생명을 보곤 말이 갑자기 많아지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셨고, 단 한 번도 인사를 먼저 건네지 않으시던 무뚝뚝한 김밥집 사장님 또한 아기를 흘깃흘깃 보시더니 먼저 인사말을 건네곤 하셨다. 한 명이라도 놓칠세라 전단지를 공격적으로 나누어주시던 할머니 또한 아기띠를 하고 양손에 무거운 가방을 든 나를 보시더니 휙 건네던 전단지를 스스로의 팔 안으로 회수하며 "어머나 세상에.." 하시며 푸근한 미소를 보이셨다.


한여름의 날씨에도 아기 춥다며(?) 갑자기 호통 치 듯 반말로 잔소리를 건네는 분을 만나 기분이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극소수였고, 오히려 불편해할까 봐 눈으로만 아기를 보며 예뻐해 주시는 배려심 많은 분들이 더 많았다.


아기 엄마도 밥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걱정해 주시던 길거리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따듯한 말, 유치원생들의 "우와, 애기 귀엽다!" 하는 짹짹이는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빛, 카페에서 흘깃흘깃 아기를 보며 웃어주다가 엄마인 나와 마주치니 민망한지 황급히 고개를 돌리던 젊은 커플의 귀여움 들을 접하다 보면 자주 피식하게 된다.


아기 키우기 각박한 세상이라는 말들에 처음 아기띠를 둘러메고 외출을 할 때는 목이 빳빳해지도록 긴장을 하곤 했는데, 무표정하던 타인들의 모습 속에서 따듯한 면모를 발견하는 경험을 더욱 많이 하게 되며 긴장이 자연스럽게 빠졌다. 동시에 품 안의 아기의 말랑함과 따듯함에 집중하며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중이다.


각박하고 부정적인 경험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계속 굴러가고 있는 건 무뚝뚝한 모습 속에 숨겨진 따듯한 면모들이 이따금씩 건네는 힘이 크다는 뜻 아닐까.


아기와 함께 세상에 첫발을 내딛으며 나 또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 더 따스한 사람이 되어 지친 타인에게 긍정적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철든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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