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내 인생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쳐 육아를 하는 요즘 '지금이 좋을 때'라는 말을 유독 많이 듣는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지만 심적, 체력적으로 힘들고 그 묵힌 피로가 쌓여 있을 때는 그렇게도 듣기 싫은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임신 초기부터 만삭까지 입덧이 심했다. 만삭이 다 돼 가니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발에 쥐도 자주 나고 똑바로 누워 자기 힘들다 보니 밤잠을 설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난생처음 겪을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호르몬의 영향으로 고슴도치처럼 한껏 뾰족뾰족 해져 있던 시절. "그래도 애가 배 안에 있을 때가 좋을 때야. 잠이라도 잘 수 있잖아"라는 말을 들으면 아직 겪어 보지 않은 육아에 대한 감이 전혀 없을 때라 그런가? 싶다가도 그냥 당장 내 현실이 힘든데 굳이 왜 저런 말을 할까 싶어 짜증이 한가득 나곤 했다.
8시간 진통 후 위급한 상황이라는 의료진이 판단 하에 응급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 이후. 수술 후 통증과 예상치 못한 후유증 등으로 눈물바람 속에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을 때도 "그래도 지금 많이 자둬. 지금이 좋을 때야."라는 말이 간간이 들렸다. 듣기 싫었다. 그냥 고생했다는 말이면 충분할 텐데.
산후 조리원에서 나와 직접 신생아 육아를 하던 때. 아기는 밤낮 구분 없이 2시간에 한 번씩 배가 고프다며 작디작은 몸을 뒤틀며 세상이 떠나가라 목청껏 울었다.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킨 후 눕혀 재우려 하면 또다시 응애응애 또 울었다.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안고 있느라 손목은 시큰거렸고 어깨는 아프고 눈가 다크서클은 짙어졌다. 그 와중에 "그래도 가만히 누워있을 때가 좋을 때야.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고 말하기 시작하면 더 힘들어."라는 말을 하는 굳이 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아기가 10개월이 되었다. 넘치는 체력으로 온 집안을 휘젓고 기어 다니며 걸음마 보조기를 부실 듯 밀며 와다다 걷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바쁜 작은 인간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다 보니 한겨울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피곤함을 달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아, 차라리 신생아 때가 좋았어."라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그동안 들었던 말들이 단순 겁을 주려던 말들은 아니었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론 이전의 힘든 기억들이 흐릿해져서 나올 수 있는 말이겠지만.
최근 지인들의 임신, 출산 소식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몽글한 추억에 빠져든다.
병원에서 처음 아기의 쿵쿵 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온몸이 따듯하게 녹아들 것만 같던 순간. 뱃속에서 꼬물꼬물 처음 태동이 느껴지던 때. 우렁찬 울음소리를 터뜨리던 빨갛고 쭈글쭈글한 작은 생명체와의 첫 만남. 처음 모유수유를 할 때의 어색함과 긴장감. 따듯하고 작은 아기를 꼭 껴안고 있을 때 처음 느껴보는 복합적인 감정적 충만함. 끙끙대며 혼자 뒤집기를 성공한 뒤 씩 웃던 작은 입술과 말랑말랑 찹쌀떡 같은 볼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따듯하고 포근한 기억들이었다.
그 순간에는 힘이 들어 미칠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모든 순간을 버티게 해 줬던 건 순간의 행복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뼈저리게 그리워질 거란 걸 알기에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기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앞서 육아의 길을 걸어간 분들의 따듯한 시선을 자주 마주친다.
"지금이 좋을 때야."라는 말에 뾰족해지기보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갑다.
당장의 내 경험과 감정에만 심취해 누군가 겪고 있을 힘듦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을 예고하는 것만 같은(?) 뉘앙스의 "지금이 좋을 때야"라는 말은 당연히 자제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힘든 것에 집중하다 놓쳐버린 과거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자주 깨달으며 그 말들에 담긴 그리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내가 먼저 걸어간 길을 걷고 있는 타인을 바라보며 그리움은 잠시 삼키고, "지금이 좋을 때야" 스스로 읊조리며 현실 속 나와 아기 그리고 소중한 이들과의 순간순간에 충실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