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후 네시쯤의 어느 날. 회색 빛 아스팔트를 밟으며 평소처럼 무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린아이 특유의 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아이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주위를 살폈다. 어리바리하며 잠시 당황스러워하다 그제야 상황 파악을 했다. '아 저 애가 나한테 인사한 거구나.' 아이의 까만 눈동자는 갈길 잃은 내 눈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섯,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동글동글한 귀여운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배꼽에 앙증맞은 손을 올리고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제야 손을 흔들며 "안녕, 고마워." 하고 대답해주었다. 모르는 내게 인사를 해준 것이 마냥 고마웠다.
잠시 후 아이의 엄마가 나타났다.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종알댔다. 그들은 내 앞을 걷고 있었고 잠시 동안 방향이 같았기에 난 그들의 뒤를 조용히 걸었다. 의도치 않게 모자의 대화를 훔쳐 듣게 되었다. 친구랑 가지고 논 공룡이 얼마나 멋졌는지, 오늘 배운 영어단어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할머니가 사준 과자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등. 아이의 대화 주제는 엄청났다.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아이는 뭐가 그리 신난 지 위아래로 폴짝폴짝 뛰곤 했다. 아이의 흥에 웃음이 났다.
"안녕하세요!"
음식점 주차요원이 보이자 아이는 또 한 번 배꼽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푹 숙이며 크게 인사했다.
"허허허, 그래 안녕!"
중년의 주차요원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담뱃갑을 쥔 손 한쪽은 급하게 조끼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한 손을 연신 흔들며 인사해주었다. 그의 인사에 아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두둠칫 몸짓을 선보이며 길을 걸었다.
파아란 하늘과 꽃잎이 떨어지고 있는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거리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때 젊은 커플이 손을 잡고 아이의 곁을 지났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또 한 번 크게 인사를 했다. 마주치는 어른들에게 모두 인사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커플은 흠칫했다. 잠시 아이를 곁눈질로 흘깃 보는 듯하더니 매정하게 지나가 버렸다.
아이는 자신을 지나쳐버린 커플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큰소리로 인사했다. 아이의 ' 안녕하세요'가 두 번이나 길가를 크게 울렸음에도 커플은 아무 반응 없이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엄마 왜 저 삼촌하고 이모는 인사 안 해줘?"
아이는 민망했는지 몸을 베베 꼬더니 엄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모르는 사이라 본인들한테 인사한 줄 몰랐나 봐."
아이의 엄마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내가 인사를 세 번이나 했는데도?"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엄마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물었다. 아까보다 조금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저 삼촌이랑 이모가 부끄러웠나 봐."
아이가 상처 받진 않을까 조마조마했기에 아이 엄마의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어른인데 부끄러워해?"
아이는 쿡쿡 웃으며 신기하다는 듯 재차 질문했다.
"응, 어른들도 부끄럼쟁이가 많아."
아이 엄마의 대답이 들림과 동시에 모자는 곧이어 나와 다른 방향의 길로 점차 사라졌다.
'부끄럼쟁이 어른들'
가슴이 콕 찔렸다. 아이의 첫인사에 나 또한 부끄러워하며 어색하게 반응했으니까. 커가면서 낯선 타인, 그것도 사랑스러운 아이의 인사를 받는 것은 매우 드물었기에.
생각해보니 아파트 단지에서 자전거 타던 아이, 주차장에서 만난 아이가 처음 본 내게 밝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던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얘가 나한테 인사한 게 맞나?'라는 의문을 먼저 품고 주위를 살폈다. 함께 인사하고 보니 내 뒤에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있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너무 무안하니까. 부끄럼 많은 나는 그 무안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엔 나도 그 아이처럼 동네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곧잘 하곤 했다. 그럴 때면 "몇 살이니?"라는 질문을 들었고 "열 살이에요." 대답을 하면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해라."등의 어른들 특유의 잔소리로 대화가 마무리되곤 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세상에 나쁜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곤 모르는 어른들에게는 굳이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모르는 이들과 인사할 일이 없게 되었다. 이런 삭막함에 꽤 익숙해져 버린 나는 순수한 아이의 인사에 조차 얼굴을 붉히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흉흉한 범죄 뉴스를 접할 때마다 모르는 아이에게 괜한 말을 먼저 거는 것은 자제하려 한다. 하지만 맑은 눈동자를 띄고 당차게 먼저 인사말을 건네는 아이들에게만큼은 망설임 없이 밝게 인사해주고 싶다. 수줍음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부끄러운 어른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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