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어른

아이들에게만큼은 무해하고 싶다

by 안나

축축한 모래더미 안에 왼쪽 손을 짚어 넣고 오른쪽 손으론 연신 모래들을 계속 끌어모으며 모래를 높게 쌓아 올렸다. 두꺼비 집을 누구보다 크게 짓고 싶어서 모래를 손으로 더욱 끓어 모았다. 함께 놀던 아이 몇몇이 "으앙!" 비명을 지르며 몇몇은 미끄럼틀 위로, 몇몇은 놀이터 밖으로 잽싸게 뛰기 시작했다. 알코올 냄새가 찌든 찌린내가 코를 찔렀다. 머리는 산발로 풀어헤쳤으며 검은 수염이 가득 난 상태로 검정 옷과 신발만을 신고 있어 색상이라곤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흑' 만을 소유한 어둠 같은 아저씨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 어둠을 피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외모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나쁜 어린이'라고 배운 날이기도 했고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어린이'라고 배웠으니까.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불쾌한 기분을 주긴 했지만 어쨌든 저 아저씨도 어른이긴 어른이니까. 동네에서 어른을 보면 인사해야 한다고 배운,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었던 나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둠에 드리운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그의 두꺼운 손이 내 머리통을 휘갈겼다. 쓰고 있던 머리띠가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놀라 온몸이 빳빳이 굳어버렸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고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세상이 멈춘 기분이었다. 공들여 지은 두꺼비 집이 무너졌다. 나 또한 모래 위로 무너졌다.


아저씨는 옆에서 놀고 있던 다른 아이들 몇몇에게도 손을 휘두르며 그곳의 평온함을 무너뜨렸다. 그때의 나는 겨우 8살이었다. 술에 잔뜩 취해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그 아저씨는 내 기억 속 최초의 '유해한 어른'이 되었다. '착한 어린이' 어야 한다는 내 강박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부모님께 놀이터에서 모르는 아저씨에게 머리통을 맞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함께 놀이터에서 놀던 동생이 그 광경을 보고 이르긴 했지만.

한동안 그 놀이터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어른들을 보면 멀리서부터 돌아갔다.


내게 지독한 악몽을 함부로 던져준, 어둠 가득했던 아저씨를 시작으로 유해한 어른들은 하나둘씩 내 인생에 의도치 않게, 함부로 등장했다. 친구와 놀고 있는데 갑작스레 뒤에서 세게 껴안으며 수치심을 주었던 아저씨(그때는 그것이 성추행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수학 문제에 대한 답이 틀리면 문제집을 바닥으로 세게 집어던지며 소리 지르며 어디선가 쌓인 분을 아이들에게 처치해버리던 학원 선생님, 유치원 때 배식으로 나온 우유가 배가 아파서 먹기 싫다고 하자 내가 먹던 밥에 그대로 부어버리며 말아먹으라고 소리치던 유치원 선생님, 중 고등학생 때 학교 앞에 돌출해 불쾌함을 주던 바바리맨들, 운전하는 내내 '씨발'과 '개새끼'를 쉬지 않고 속사포로 내뱉던 택시 기사, 길거리에서 소리를 고레 고레 지르며 욕하며 싸우던 어른들.

유해한 어른들에게 받은 불쾌함 들은 어린 내게 공포를 주었고 이어 '어른들 별거 없네'라는 반항심을 갖게 했다. 어른 말 잘 듣고, 욕하지 말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던 어른들이 막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 속에서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다행히도 유해한 어른들에게서 받았던 상처와 배신감들은 무해한 어른들의 뜨거움으로 덮어질 수 있었다. 버스에 탔는데 돈이 모자라 당황해하자 "나중에 꼭 갚고 오늘은 그냥 타." 라던 버스 기사, 자존감이 화두였던 시절도 아니었는데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설명해주던 영어학원 선생님, 장난치다 다리 다친 나를 들쳐 엎고 몇 분을 달리며 땀을 뻘뻘 흘리던 수련원 교관, 스키 타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던 아저씨, 길을 잃어 눈물을 그렁대고 있자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길을 찾아주던 대학생 커플 등.

이들에게 받은 무해한 따듯함 덕분에 유해한 어른들로부터 받게 된 증오는 반감되었다. 나도 크면 이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 또한 했으니 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를 준 것이기도 했다.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과 증오 반대로 애정과 친절을 복합적으로 받고 자라난 나 또한 '어른'이 되었다. 후자 쪽의 비율이 더 높았다는 점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른이 된 나는 종종 분노에 기반한 무서운 상상을 하기도 한다. 열 받게 구는 이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에 충분한 나쁜 말들을 지껄여주고 싶기도 하다. 무서운 상상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성을 부여잡고 참고 또 참을 때가 많다.


2021년의 어른인 내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하겠다. 위인전에 나올 위인들의 훌륭함과는 거리가 멀고, 누군가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내할 용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 또한 존경받는 어른이 되는 것 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살다 보니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렸고 누구나 다 어른이 되니까.

오히려 우연히 마주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말과 행동들로부터 온기를 선물 받을 때가 많다. 사슴같이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안녕하세요!" 라던 아이의 따듯한 인사로부터 회색빛 의례적인 인사들에 익숙해져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기도 했고, 늘 보던 길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며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가 울먹이며 걱정하던 모습을 보며 뭉클함을 느끼기도 했다


가끔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유해한 인간일 수 있는 나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무해한 어른이고 싶다. 조금 더 친절하고, 어른들의 시선에선 당연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선 낯설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어른. 아이의 때 묻지 않은 맑은 인사에 웃으며 함께 인사해줄 수 있는 최소 무해한 어른. 아이들에게만큼은 무해하고 싶은 어른들의 작은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말랑말랑한 소중한 마음들이 뾰족해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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