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Apr 06. 2022

신나는 발차기

좋아하는 것 알아가기

날이 밝던 어느 오후였다.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 체력 강화를 하기 위해 헬스장으로 향했다. 4층에 위치하였기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곧 작고 동글동글한 남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은 채 폴짝폴짝 뛰며 다가왔다. 다섯 살에서 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아이는 허공을 향해 댕강한 다리를 버둥 대며 "얍!" 소리쳤다. 색색 거리는 바쁜 호흡과 동시에 하늘색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마스크가 작은 얼굴에서 연신 들썩 거렸다. 아이의 엄마는 그 발차기가 혹여 내게 피해를 줄까 봐 고개를 저으며 발차기를 멈추 했다.


"그럼 태권도 가면 발차기해도 되는 거야?"

아이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향해 물었다.


자연스럽게 그 모자가 2층에 있는 태권도 도장에 가는 길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저렇게 작은 아이가 태권도복을 입으면 하얀 콩알처럼 더 귀여울 것 같았다. 물론 그 하얀 콩알들은 본인들이 그 누구보다 용맹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물론이지! 태권도 가면 발차기 실컷 해도 되지!"

엄마의 긍정적인 대답에 아이는 또 폴짝폴짝 뛰었다.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모자와 나는 또다시 한 공간에 있게 되었다.


"신난다! 발차기 좋아!"


아이의 꺄르륵 거리는 웃음소리가 작은 회색빛 엘리베이터 안 공간을 다채롭게 만들어줬다.  문이 열리아이와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콩콩 뛰어대는 작은 아이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쫓아내리고 싶었다.


헬스장에 도착해 러닝머신 위를 무표정으로 걷는데 아이의 청량한 목소리에 담긴 기쁨이 자꾸 떠올랐다. 겨우 발차기하는 게 그렇게도 신날까. '신나설레는 게 단순해서 좋겠다'라는 탁한 어른 같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내가 그 아이만 할 땐 문방구에서 고심해서 고른 스티커를 좋아했다. 피아노를 딩동댕동 누르며 즐거워하기도 했지만 금세 싫증을 내기도 했다. 물감과 크레파스를 가지고 온갖 상상을 할 때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자랐을 땐 동화를 쓰겠다며 A4용지에 이 것 저 것 써대기도 했다. 엄마는 내게 태권도를 가르치려 했지만 피아노 학원 옆에 위치하던 태권도장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목소리들에 기가 죽어 안 가겠다고 했었다. 태권도를 다니던 동네 아이가 '다리 찢기'를 시켰는데 엄청 아프다며 겁을 줬던 이유도 컸다.


정해진 틀대로 꾸역꾸역 살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던 해였다. 마냥 즐겁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삼십여 년 인생 중 가장 고뇌와 방황이 많았던 시기였다. 처음으로 술에 취해보고, 화장을 하고,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하면서 짧은 흥미로움 들을 느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은 무료하다가 불안해졌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다시 친구들을 만나 한탄하기도 하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자주 마셨다. 즐거운 게 뭔지 몰랐기에 남에게 의존했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회사 생활을 하고 내 선택과 무관한 불편한 인간관계들 속에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다가 우연히 서점에 들러 충동적으로 책을 몇 권 샀다. 심리 관련 서적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맞다. 나는 글 읽는 걸 좋아했지. 감정을 일기장에 휘갈기며 쓰는 것도 좋아했고 말이야. 좋은 생각이 담긴 텍스트를 눈과 마음에 담는 시간이 좋았다. 종이의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책장을 넘길 때의 손의 촉감도 소중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는 즐거움을 조금씩 채워 넣기 시작했다. 또 다이어트와 건강을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에서도 조금씩 즐거움을 얻었다. 아이처럼 콩콩 뛰며 신나는 텐션까지는 아니지만 요즘의 나는 마음에도 맞지 않는 타인들까지 억지로 만나며 감정을 기대기보다는, 혼자서 글을 읽거나 쓰고, 체력이 키우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잔잔하지만 신나기도 했던 것 같고. 생각해보니 러닝머신 위에서 사색하는 것 또한 꽤 즐거운 일인 듯하다. 운동을 설렁설렁한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어떤 걸 할 때 즐거운지 알아내는 것. 그래서 그 신나는 걸 자꾸 내 생활 속에 조금씩이라도 끼워 넣어서 부정적 사고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 생을 살아가며 꾸준히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노력 아닐까.



콩콩 뛰던 동그란 아이가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말랑 발을 신나게 뻗어내기를. 혹시 발차기에 싫증이 나더라도 또 다른 설렘을 찾아서 계속 콩콩대기를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 Pexels]

매거진의 이전글 자줏빛 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