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안을 하고 화장대에 앉아 얼굴에 이런저런 기초 화장품들을 바르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화장대 중간중간 먼지가 쌓인 것이 보여 물티슈를 뽑아와 닦아내다가 가장 고가의 에센스를 들어 하단의 유통 기한을 확인했다. 이 블링 블링한 용기가 화장대 위에 올라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새 거인 것 같은 싸한 느낌이 순간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태였다. 일주일 정도 뒤면 소위 명품 화장품이라 불리는 이 에센스를 처분해버려야 하는 상황. 급한 마음에 에센스의 펌프를 마구 눌러 내용물을 손에 한가득 덜어 목이며 팔, 다리에 까지 슥슥 발라주었다.
비싼 거여서, 고급스러운 거여서 내 화장대에 오래 올려두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덜어서 쓰거나,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부담스러운 만만한 화장품들을 자주 발라주곤 했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에센스를 바라보자니 여전히 반짝이는 영롱한 로고까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끼면 똥 된다. 딱 그 꼴.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까지 며칠 동안 이 에센스를 다 써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팔과 다리에 열심히 발라주었다. 찬란한 꽃이 지 듯 유통기한이 임박한 명품 화장품은 처량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였다. 그렇게 유통기한이 지남과 동시에 한 동안 내 화장대를 멋지게 채워주던 그 에센스는 분리수거 통에 담겨 쿨하게 떠났다. 안녕.
초반엔 아껴 쓰겠다며 조금씩 소중하게 덜어 사용해놓고 막상 유통기한에 임박하고 나니 펌프를 푹푹 눌러 내용물을 사정없이 덜어 내, 팔과 다리에 성의 없이 퍽퍽 펴 바르던 나의 이중성에 웃음이 났다.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순간의 찬란함이 있는 법인데. 그 찰나를 너무 오래 즐기기 위해 결국 값진 순간을 놓쳐버렸던 것이다.
값지고 소중해서 고이 아끼던 것들을 미래가 아닌 현실 속에서 즐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빛을 발하는 것보단 빛이 바라기 전에 즐기는 것이 더 유쾌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