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May 27. 2022

명품 화장품의 유통기한

세안을 하고 화장대에 앉아 얼굴에 이런저런 기초 화장품들을 바르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이었다. 화장대 중간중간 먼지가 쌓인 것이 보여 물티슈를 뽑아와 닦아내다가 가장 고가의 에센스를 들어 하단의 유통 기한을 확인했다. 이 블링 블링한 용기가 화장대 위에 올라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새 거인 것 같은 싸한 느낌 순간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태였다. 일주일 정도 뒤면 소위 명품 화장품이라 불리는 이 에센스를 처분해버려야 하는 상황. 급한 마음에 에센스의 펌프를 마구 눌러 내용물을 손에 한가득 덜어 목이며 팔, 다리에 까지 슥슥 발라주었다.


비싼 거여서, 고급스러운 거여서 내 화장대에 오래 올려두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덜어서 쓰거나,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부담러운 만만한 화장품들을 자주 발라주곤 했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에센스를 바라보자니 여전히 반짝이는 영롱한 로고까지 애물단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끼면 똥 된다. 딱 그 꼴.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까지 며칠 동안 이 에센스를 다 써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팔과 다리에 열심히 발라주었다. 찬란한 꽃이 지 듯 유통기한이 임박한 명품 화장품은 처량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였다. 그렇게 유통기한이 지남과 시에 한 동안 내 화장대를 멋지게 채워주던 그 에센스는 분리수거 통에 담겨 쿨하게 떠났다. 안녕.


초반엔 아껴 쓰겠다며 조금씩 소중하게 덜어 사용해놓고 막상 유통기한에 임박하고 나니 펌프를  푹푹 눌러 내용물을 사정없이 덜어 내, 팔과 다리에 성의 없이 퍽퍽 펴 바르던 나의 이중성에 웃음이 났다.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순간의 찬란함이 있는 인데. 그 찰나를 너무 오래 즐기기 위해 결국 값진 순간 놓쳐버렸던 것이다.


값지고 소중해서 고이 아끼던 들을 미래가 아닌 현실 속에서 즐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빛을 발하는 것보단 빛이 바라기 전에 즐기는 것이 더 유쾌한 일니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