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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11. 2022

누수

일상으로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던 저녁. 강남역과 이수역 등  자주 가공간 이곳저곳이 침수되었다는 뉴스를 남일처럼 바라보며 달콤한 망고 껍질을 벗기고 있을 때였다. 우리 집은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속하고 저층이 아니기에 안전할 거라는 철없는 안심을 하며 말랑한 망고를 오물오물 대고 있었다.


후드득-


갑작스레 천장 위에서 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악!"

남편이 외마디 소리를 치며 물이 쏟아지는 곳에 위치한 우리의 결혼 앨범, 책, 향수 등을 한편에 밀어냈다.


후두두둑 -


더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황당하게 바라보다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달은 우리 둘은 합심하여 우선 비가 새지 않는 곳으로 소파를 힘차게 밀어냈다.


괴기스럽게 떨어져 내리는 비로 인한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는 게 내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기에 이게 현실이 맞나 계속 곱씹어봤다. 남의 일이라며 근거 없이 확신하던 자만심에 대한 벌인가 하는 생각도 들다가 다른 호수에는 전혀 물이 새지 않는다는 상황을 확인하자 억울한 마음에 들었다.


거실에 이어 안방 또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작은 방과 부엌을 제외한 모든 곳에 물이 떨어졌고 발등에 물이 찰랑대자 공포감이 밀려왔다. 집안의 양동이란 양동이를 다 가지고 와서 떨어지는 물을 받고 수건이란 수건을 다 꺼내서 바닥에 차오르는 흡수 시켰다. 물이 불어나지 않게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우리의 신혼집이, 일상이 담긴 공간이 무참히 젖어가는 것이 황당해서 화가 나다가 감정이 식어 멍하다가 잠옷 바람으로 뛰어다니며 물과의 전쟁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낯설어서 웃음까지 났다.


전셋집이기에 집주인 아저씨께 연락을 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집주인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하신 뒤 바지를 걷어 올린 뒤 함께 물을 치웠다. 공들여 디자인한 인테리어 자재들을 걱정하시며 연신 물을 치우는 그의 분주함을 잠시 달래며 주스를 한 잔 건넸다. 천장 바로 위에 배수관이 있는데 그곳이 막히면서 물이 역류했다고 하셨다며 설명하는 입 위로 이마에서 흐른 땀과 물이 쓰윽 떨어졌다. 천장에 살짝 구멍을 뚫어 넘친 물을 마저 흘려냈다.


'물이 센다'는 간단한 연락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없 딸이 걱정되었는지 근처에 사시던 부모님까지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평상시 자매이기에 유독 무심한 대화만을 이어가던 동생 또한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지만 괜찮다며 한껏 만류했다.


두 시간 정도 물을 받아내고 퍼내고 난 뒤 모두가 돌아간 축축한 집에 남편과 둘이 지쳐 버린 채 남았다. 땀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로 뒤범벅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다가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배수관의 막힌 부분을 해결하자 더 이상 물은 세지 않았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안도감이었을까. 평화롭던 일상에서 극에 달하는 공포의 상상을 경험하다 보니 피해가 이만한 것에 대해 감사했다.


깨끗한 물로 땀과 빗물을 씻어낸 채 악몽을 꾼 채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약한 두통을 느끼며 일어나 엉망이 된 집안을 다시 정비하기 시작했다. 신발을 워낙 좋아했기에 플랫슈즈와 운동화 몇 켤레를 베란다에 뒀는데 신발 안에 물이 그대로 차 버린 걸 알고 속이 쓰렸지만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치워버렸다. 빗물을 닦아내던 수건 또한 걸레가 되어버렸기에 싹 비워버렸고 젖은 책들은 펼쳐 말렸다. 집안을 드러내자 나오는 각종 먼지와 카페 음료 쿠폰, 읽지 않고 쌓아두던 잡지책 또한 한가득 비워냈다.


'폭우'라는 불청객으로 짧은 일상이 엉망이 됐다. 더 많은 피해를 본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걱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의 또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며 과거의 나의 태도를 반추해본다.


무서울 만큼의 엄청난 비로 인해 거실과 안방에 물이 차고 짧은 일상까지 집어삼켜진 상황 속에서 내 일상을 유지하고 있던 건 불안함에 자꾸 채우던 어떠한 물건들이 아닌 내 주위를 채운 끈끈한 누군가의 관심이고 내 심적인 중심임을 절실히 느꼈다.


먹을 반찬이 없겠다며 반찬을 포장해주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는 내 부모님과 틈틈이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사소한 안부 연락에 차분해지는 마음을 유지하며 일상으로 복귀해본다. 를 낭만으로 삼던, 평화롭때로.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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