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Sep 05. 2022

꿉꿉한 티셔츠

지긋한 폭우로 베란다에 널어두었던 빨래들이 잘 마르지 않는다. 아니, 마른 건가 싶어 걷으려다가 습한 느낌에 다시 건조대에 걸어둔다. 햇빛은 부족하고 습도는 높으니 말라도 마르지 않은 듯 찝찝한 상태가 지속된다. 특히 유난히도 신경 쓰이던 흰색 티셔츠를 코에 대보니 꿉꿉한 냄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섬유탈취제를 뿌려보기도 하고 실내로 끌고 들어와 제습 상태에서 습한 냄새를 날려본다. 나의 노력과 더불어 잠시 해가 드리웠던 순간 등이 어우러지면서 대부분의 옷들은 어느 정도 보송한 모습을 되찾았으나 죽어도 꿉꿉한 태를 벗지 못하는 흰색 면티 한 장이 신경을 건드린다.


마지막 특급 조치다! 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흰 티를 집어 세탁기 안에 다시 던져버렸다. 쌓여있던 다른 하얀 빨래들과 함께 빙빙 도는 그것을 바라보며 그 정도 돌려줬으면 정신 좀 차리고 다시 보송하고 향긋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시지? 외쳐본다. 섬유유연제의 일시적인 처방으로 잠시 향긋함이 느껴지던 흰 면티를 다시 한번 건조대에 널어본다. 일망의 희망을 가져보며.


희망은 개뿔. 또 폭우란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다. 다음날 조심히 베란다로 나가 건조대에 널린 그 흰 티를 집어 올려 코 끝에 대어 본다. 축축함과 더불어 새로운 꿉꿉함이 더해진 신상 꾸렁내를 내뿜고 있다. 한숨을 푹 쉬며 이 옷을 언제 삿더라 회상해본다. 작년 여름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했던 기본 흰 티셔츠로 재킷 안에 입어주기도 좋고, 단품으로 요리조리 입어주기 좋아서 봄, 여름을 자주 함께 하던 옷이었다. 소위 말해 뽕은 뺀 녀석.


살짝 목이 늘어나려 하는 면티를 만지작 거리다가 더 이상의 집착은 그만. 이별을 결심했다. 아쉬움이 남아 그것의 끝단을 엄지와 검지로 문질 대며 질척거려보다가 영영 떠내 보냈다. 찝찝한 기분만을 남겨주던 그것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살면서 저 면티처럼 꿉꿉함만을 내뿜어 조용히 혹은 소란스럽게 떠나보낸 자들이 몇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떠나보내진 면티였을 수도.


옷장 속을 바라보며 바라볼 때마다 기분 좋은 향이 퐁퐁 나는 옷들로만 채워보겠다고 다짐본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