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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Sep 14. 2022

버린 글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 몇 개를 삭제했다. (다행히 발행 취소 글로 분류되어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 보관된다) 글을 쓰던 순간에는 속 시원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찝찝해지는 '특정인'을 향한 감정적인 비난의 글 몇 개였다. 상대에 대한 원망이 가라앉은 뒤 그 글을 읽어보니 감정에만 극단적으로 치우쳐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 글을 읽었을 누군가가 나의 흥분 상태를 그대로 흡입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타자기에 손가락을 올려놓음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문장이 챠르르르 완성되는 순간들이 있다. 좋은 경험으로 감동에 일렁이는 순간도 있었지만 더 강력한 것은 누군가에 대한 날 선 증오심이 가슴속에 응어리로 꽉 차 있을 때였다. 친구의 탈을 쓴 자존감 도둑, 좋은 상사의 탈을 쓴 지능적 괴롭히기 대마왕, 더 나아가 좋은 탈 따위는 애초에 없었는지 무례함의 탈을 그대로 쓰고 더 무례한 행동을 일삼던, 태초부터 예의 따위는 장착하지 않고 태어난 듯한 타인들에게 받은 상처를 잊기 위해 울분을 쏟고 싶은 순간들.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소리치고 싶지만 지성을 갖춘 사회인으로서 그런 건 너무 체면 서지 않는 행동이기에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다가 그 눌러 담은 것들이 곧 터져버릴 것 같을 때. 그렇게 터져버려서 나를 비롯한 주위를 더 피폐하게 만들 것 같아 두려울 때. 그럴 때 글은 신들린 듯 잘 써졌다.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는 생생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냈지만 타인에게 보이는 글로 활용할 땐 그 감정에 나만의 논리와 교훈을 담아보고자 노력했다. 당시에는 그 감정이 최대한 정제되었다고 생각한 채 뿌듯하게 그 글을 내보인 것이었는데 몇 개월이 지나 울분의 감정이 잊힌 상태에서 읽어보니 그 글에서는 오직 흥분으로 가득 찬 날 것의 감정만이 읽혔다. 그 감정을 애써 숨기기 위해 나름의 긍정적 어조를 담고자 했던 노력이 느껴졌는데 멋있다기보다는 안쓰러웠다.


특정인을 향했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자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감정에만 치우쳤던 일부 글들을 휴지통에 과감히 버렸다. 당시의 응어리 쌓였던 감정도, 타자기를 부서져라 두들기며 거칠게 숨을 몰아내 쉬던 과거의 내 모습과 함께 희미해졌다.


타자기를 두드릴 때 고민 없이 속 시원하게 내뱉어지는 흥분된 감정에 치우친 글들은 내 일기장에 잠시 보관해두고 시간이 지나고 그 감정이 희미해졌을 때 읽어도 얼굴이 뜨겁지 않아질 만한 담담한 글들을 발행해보자고. 자체적인 발행 기준을 설정해본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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