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 서서히 멀어진 지인이 있었다. 특별하게 싸운 적은 없었지만 그녀를 만나고 난 뒤엔 늘 기운이 빠지고 우울해졌다. 외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었음에도 본인 피부의 작은 점, 누가 봐도 예쁜 눈, 코, 입을 하나하나 뜯어내며 끊임없이 비하했고,날씬했음에도 소파에 앉았을 때 허벅지가 눌린다는 이유로 입 안에 케이크를 넣고 있는 본인이 돼지 같다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곤 했다. 누군가 본인의 직업을 비하했다며 본인이 이룬 성과와 그에 따른 노력들을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 취급했다.
언젠가부터 그녀와의 대화 주제는 항상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비하'였고 나는 네가 돼지면 세상 사람들은 다 뭐가 되냐.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넌 충분히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다. 라며 그녀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영혼을 담아 위로해줬다. 봄의 만남에서도 그녀의 가치를 높여주기 위해 목이 아파라 칭찬을 토해냈고, 여름의 만남에서도 토닥여주다가, 가을의 만남쯤에 지쳐서 화를 냈다. 겨울의 만남에는 지쳐버려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떠난 뒤였는지 이번에는 스스로의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를 비하하며 한숨을 푹 쉬는 그녀의 눈을 피해 창밖을 바라봤다.
본인의 가치를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동댕이 치는데 혈안이 된 것 같던 그녀는 어느 순간 비하의 대상을 타인에게 돌렸다. 누군가의 행복 속에서 흠을 찾아내는데집중했다. 마치 그 흠을 찾아내면 본인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올라갈 것처럼 기뻐하면서.
소중한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옆에 있어주며 도움을 주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인 나였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남들의 달콤한 위로 속에서, 더 나아가 누군가의 흠을 찾아내는 것에 집중하며 채우려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췄다.
적당한 겸손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스스로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깎아내는 말과 행동은 습관이 된다. 그 습관을 인지했다면 멈추려는 노력을 더해야 하는데 그 노력은 배제한 채 어둠 속으로스스로의 가치를 가둬버리고, 나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듯 다른 사람들의 가치 또한 깎아내리려는 순간. 고질병으로 굳어버리게 된다.
나 또한 타인의 어리숙함을 귀엽게 보면서도 나의 뚝딱거림에는 오랫동안 이불 킥을 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한 편이다. 그 성향이 바탕이 되어 정신없게 살다 보면 유독 내 실수에만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못난 부분에만 치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내가 미워 죽을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 그 혐오감을 속 시원하게 입 밖으로 내뱉고 싶어 진다. 그렇게 내뱉고 나면 누군가 내 부정적 감정을 덮어줄 만한 달콤한 말로 위로해줄 테니까. 하지만 타인의 달콤한 말에만 기댄 채 정작 스스로에게 따듯한 시선을 주지 않다 보면 더 이상 아무도 내 가치 향상에 도움을 주는 말을 건네주지 않는 시기가 온다. 해결하려는 의지 따위 보이지 않는 어둠을받아주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 못남이 유독 커 보일 때. 사소한 것이라도 잘한 것들을 되새김질해보며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치려는 스스로의 가치를 복원하는 노력을 더해보다 보면 밝음의 비중이 조금 더 커지는 순간이 다가오지 않을까. 비하하는 습관을 고질병으로 키우기 전에 조금씩 내 가치를 인정하는 연습을 해보면 좋겠다. 온전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나니까.
오늘은 청량한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이 좋아서 차를 타는 대신 만보 걷기를 완수했다. 이런 나의 활기찬 추진력에 잠시 취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