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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기 Mar 08. 2024

이스탄불에서도 여전히 서울의 몸과 정신이 살아있었다.


10일간의 튀르키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고 나서 나는 이 여행이 내게 무엇이었고, 내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좀 혼란스러웠다. 여행에 굳이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행이 끝났는데 뭔가 이번 여행에 대해서 가볍게는 ‘좋았다’ ‘안 좋았다’ 라고 감상을 쉽게 내릴 수도 없는 오묘한 상태에 놓인 것이었다. 소위 말해 ‘껄쩍지근한’ 느낌이 내 몸을 뱅뱅 돌았다. 정리가 안 되고 뭔가 답답하고 개운하지가 않은 거였다. 대체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이게 뭘까? 며칠 간 이 혼란스러운 느낌의 원인을 찾으려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두리번거림 속에 있었다.

 



이번 튀르키예 여행을 계획할 때 나는 마음껏 가볍고 자유롭게 쏘다니고 오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메말라진 내 영혼에 물을 대주고 햇볕을 쏘여주겠다고, 이국적 정취와 영감을 듬뿍 받고 오겠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된다면 춤추는 공간도 방문해서 움직임도 해볼 생각이었고 그쪽 움직임 스타일이나 좋은 음악들을 잔뜩 흡수해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이스탄불에서 해방감이랄지 가벼움이랄지 자유로움 같은 것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갈망하던 이스탄불에 왔으면서도 충분히 자유롭고 가볍지 않았다. 이전의 여행과는 매우 다른 결이었다. 한국 땅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이스탄불에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었고 이스탄불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으나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표면적으로 여행이라는 시간이나 그저 안고 한국에 다시 왔다.

여행의 시간이 너무 짧아서 였나?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예전에 여행했을 때보다 훨씬 정신적 심리적으로 좋은 상태에서 여행을 계획했는데 말이었다. 이제는 정말 새처럼 가볍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제는 정말 자유로운 해방감을 만끽하고 영감으로 고취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었다

 



이번 이스탄불 여행 전에 가져갈 책이 있을까 하고 둘러보다가 강신주 철학자의 <망각과 자유>라는 책을 무심코 선택했었다. 대략적으로 목차나 내용등을 살폈을 때 딱히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 책을 거의 본능적으로 선택했다. 선택하면서조차 선택하는 내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석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을 생각했었다.

정작 이스탄불에서는 읽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책을 천천히 읽다가 문득 몇 구절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꺼림칙한 느낌에 대한 실마리가 되어 줄 수 있는 거였다.




"대지 위의 구멍들에서 나오는 소리도 순수하게 그 구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과 구멍 사이의 마주침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이 점은 사람들이 만든 악기들에서 나오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악기의 소리는 사람의 호흡과 비어 있는 악기 사이의 마주침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우리도 일종의 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작동하는 피리라면 우리는 타자와 마주쳐서 그에 걸맞은 소리를 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소리를 내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소리를 내기에 바쁘다...

'자신'이라는 피리의 내부를 막고서 타자와 마주쳐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허구적 자의식. "

 


"비운 뒤에야 우리는 타자와 마주칠 수 있고, 오직 그럴 때에만 하나의 울림이 우리 내면에 발생할 수 있는 법이다.. 장자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비움, 마주침, 그리고 울림의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창조로서 표현되는 것이다...자의식을 비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자와 마주칠 수도 없고 따라서 어떤 울림도 발생할 수 없다."




나는 충분히 비우고 망각하지 못했다.

이스탄불에서도 여전히 서울의 몸과 정신이 살아있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과 이스탄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여행의 시간을 접은 이제야 하나의 깨달음 같은 것이 내게 다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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