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흔 정도 즈음에는 예술가로서 엄청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름도 얻고 인정도 받고 안정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 무용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피와 땀을 쏟으며 자기 길을 묵묵히 진실하게 걸어가면 그런 것들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나 이치처럼 저에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했으니, 진짜 마흔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고, 뭐라도 이룰 줄 알았습니다.
2023년 작년 마흔 살이 되던 해, 눈을 떠보니 저는 무용만 하고 나이만 먹은 마흔 살 생계형 무용인이 되어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서 무용을 했고, 그렇게 마흔 살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밥벌이 하느라 고단한 몸과 정신. 결국 이렇게 살기 위해서 그동안 내 모든 것을 쏟았던가. 참담했습니다. 그동안 오로지 춤만이 전부였던 한쪽 눈의 세계, 저 혼자만의 세계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크고 이상적이었던 예술도 무용도 사실 이 세계를 이루는 여러 다른 요소들처럼 그저 적정한 만큼의 의의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 혼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던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동안 헛살았다... 제 과거가 완전히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와장창 내쳐졌습니다.
이제는 진짜 무용을 못해먹겠다,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애증의 사슬을 정말로 끊어내고 싶었습니다. 나는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 자신에게 끝없이 묻고 또 물었습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돈 속에서 답답함과 암담함에 몸서리쳤습니다. 이렇게 내 인생이 흘러 떠내려가는구나.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속박 같은 암담한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자유롭고 싶어서요. 무용을 완전히 그만 둘 작정을 하고요. 막연히 제 살 길, 제 인생의 답 같은 무언가를 찾아서요. 숨구멍이고 도피처이고 필사적인 희망처였습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어차피 결국 제가 스스로 콱 쥐고 풀어가야 할 저의 과제라는 것을 알았지만, 여행의 총체가 제 기저로 들어올 거라는 것, 하나의 횃불과 영감, 작은 손짓이 되어줄 거라는 한 톨의 필사적이고도 담담한 믿음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여행 중: 걷다. 찾다. 헤매다. 고독 속으로, 고요 속으로 침잠하다.
낯선 여행지에서 자주,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속 묻고 놔두고 또 다시 들춰보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뼈로 스며드는 고독, 깊은 물속에 정수리까지 푹 잠긴 고요 속에 자주 있었습니다. 저는 제 가장 깊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결국엔 길을 찾게 될 거라는 믿음이 세워지다가도 또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했습니다.